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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 風景이 있는 Essay 1 - 승호대에서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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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c 작성일 2011-07-25 23:08 댓글 0건 조회 5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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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은,
철없던 시절이나 나이 먹으나 왠지 모를 설레임이 있어 좋습니다.
이 나이에 웬 방학 타령이냐고요? 어찌 어찌 하다가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초딩시절,
철수와 순이가 매미채를 잡고 곤충채집을 하는 그림이 표지에 한 가득 채워진 잉크냄새 폴폴 날리던 방학책을 받아 들고
한걸음에 집으로 내닫던 그 시절이 흑백사진처럼 되살아 나는 한나절, 카메라를 둘러메고 홀연히 길을 떠납니다.
     
바람을 타고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싱그러운 풀내음과 제 이름을 숨긴 채 수줍게 피어난 들꽃들의 향연,
낮선 나그네를 인도하는 신작로는 한여름의 풍요로움과 한가로움이 교묘하게 접점을 찾으면서
눈시울이 시큼해지도록 한동안 침잠되었던 낭만과 정취를 되살려 냅니다. 

사진 속의 여름풍광은 다도해도 아니고, 서해안의 어느 한적한 섬마을 풍경도 아닙니다.

춘천시내에서 30여분 정도 동북쪽으로 차를 달리면 춘천시 북산면 부귀리.
지명은 富貴里인데 형세는 속세의 부귀영화를 피해 산중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옹기 종기 모여서 사는듯
은둔의 소담함마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 건봉령이라는 조금은 험한 산길을 따라 승호대를 오르면 뭇 사람들에게는 숨겨진 비경 한 폭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길손을 위해 마련해놓은 반평 남짓한 전망대 가장자리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노라면
고려 말 나옹 선사가 남긴 시한수가 절로 살아나지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대자연은,
탐욕과 집착, 위선과 가식 다 벗어 던지고
푸른 가지를 스치는 솔바람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살라고 합니다. 

좀 더 머물까?... 머뭇거리다가 돌아서 한참을 내려오면 어느새 다시 속세의 한 가운데 서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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