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마당

기별게시판

37기 태종 이방원과 박근혜의 公心과 私心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돈길 작성일 2016-12-08 00:08 댓글 3건 조회 481회

본문

                       태종 이방원과 박근혜의 公心과 私心

                                                                                    2016.12.8

조선왕조에는 태조 이성계를 비롯 27명의 임금이 있었다. 이들 중에서 공심(公心)이 가장 투철했던 임금은 단연코 태종 이방원이다. 공심을 위해 자기 처남 4명을 모두 죽이고 사돈인 심온(세종대왕의 장인)도 죽이고 혁명공신들도 죽인다. 태종의 공심을 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임금”이라는 이미지가 붙어 있다.

아버지 태조 이성계는 사심(私心,가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비 신의왕후의 아들 방우를 비롯 6형제를 놔두고 후비인 신덕왕후의 방석이를 세자로 책정하였다. 이로 인해 조선왕조의 첫 피바람이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지도자의 불행은 이어지고 있다.

야사에 의하면 태종이 세상을 떠난 날(음력 5월 10일)에 내리는 비가 태종우(太宗雨)이다. 필자도 수년 전 기상청에 문의하여 매년 음력 5월 10일 비 온 통계를 보니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대부분 비가 내렸다. 아들 세종에게 “가뭄이 극심한데 비록 알게 된다면 이날에는 반드시 비가 오게하리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태종 즉위 4년 10월에는 제1차·제2차 왕자의 난으로 정사공신과 좌명공신인 이거이(李居易)이다. 태종은 혁명동지인 이거이와 그의 아들 이저, 이백강 등을 서인으로 강등시켜 진주에 안치했다. 이저는 태조 이성계의 장녀 경신공주와 혼인하여 부마이고, 이백강은 태종 자신의 장녀 장순공주와 혼인하여 부마였다. 자기의 처남 민무구, 민무질 형제도 사사(賜死)시켰다. 이들 두 형제는 왕비 원경왕후의 친 동생이고 제1차·제2차 왕자의 난에 절대적 기여자이다. 아버지 이성계는 이 사실을 보고 받고는 “친인척 가운데 살아 있는 자가 몇 명이냐?”『태종실록』 4년 10월 20일

태종 재위 2년 종로 네거리에 신문고(申聞鼓,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할 수 있는 곳)를 만들었다. 노비들이 신문고를 쳐서 알렸는데 이 건으로 두 형제는 사사된다. 나머지 처남 민무휼, 민무회도 공심보다는 사심이 앞섰기에 사형시킨다. 태종의 공심은 백성을 아끼고 사랑했다. 어느 해에는 메뚜기 극성으로 논 농사에 피해를 주자 메뚜기를 잡아 오라고 하여, 그 중에 큰 놈을 골라서 “네가 곡식을 먹어 백성을 괴롭히니, 차라리 내 오장을 긁어 먹어라”하고는 산 채로 집어 삼켰다.

태종은 기본적으로 아버지는 공심보다는 사심이 강해서 조선왕조의 첫 걸음이 실수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법 위의 어느 누구도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면서 사랑했던 방번이와 방석를 죽인 이방원이에 대해 원수같이 대했다. 태조는 죽을때도 자기의 “릉침 봉분에 뗏장이 아닌 영흥의 억새풀로 하라”고 하였다. 동구릉에 가면 억새풀이 길게 자란것을 보면 아들 이방원이가 얼마나 미웠으면 그랬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용서를 받기 위해 온갖 사죄의 뜻을 전했다.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함흥차사(咸興差使)이다. 당시 박순, 성석린 같은 충신이 대표적인 함흥차사이다. 오늘날에도 약속보다 늦게 오거나 오지않으면 함흥차사라는 말로 회자되고 있다.

아버지 태조 이성계의 마지막 운명을 보면 이방원은 손수 청심환을 드렸으나 삼키지 못하고 태조 이성계는 두어 번 태종 이방원을 바라보면서 숨을 거두었다. 태종 이방원에게 용서한다는 말은 없었다. 애증이 서린 아버지였다. 효도하고 싶어도 이 세상에 없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부터 순종까지 그리고 대한민국 수립 후 이승만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까지 사심으로 인해 유배, 흉탄, 자살 등으로 인생을 마감한 것을 보면 후세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매우 부끄럽다.

최근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 사태로 총체적 난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선 한국경제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이다. 금년 실업율은 3.8%에서 내년에는 3.9%로 높아 지며,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실업대란이 올것이라고한다. 미국·일본은 호조세를 보이고 있는데도 우리만 역주행(생산, 소비, 투자, 수출은 계속 감소)을 하고 있다. 경제협력기구(OECD)도 내년도 경제성장율을 3.0%에서 2.6%로 하향조정했고 해외투자은행은 무려 1.5%까지 전망치도 나왔다.

작금의 광화문 200만 시민의 집회를 보면서 박근혜의 사심이 얼마나 혹독한가를 보았다. 그러나 집회가 하야를 요구하고 정치권에서도 벌써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 하야는 군중의 힘으로 되는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이를 무시하면 법치국가의 근본이 흔들린다. 현재 하야는 내란선동, 국가 비상사태 등 어디에도 논거(論據)를 볼 수 없다. 민주시민이라면 차분이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 기다리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37기 최돈길

댓글목록

profile_image

바람소리님의 댓글

바람소리 작성일

불안한 시국은 통치력의 부재로부터 시작된다
정적은 무자비하게 척살해버린 태종의 통치력이 밑거름이 되어 이조 500년이란 역사를 어어가게 했지싶다.
명황제로부터 고명(誥命)과 인신(印信)을 받아낸 왕이였지만 아무도 그를 친명파 사대주의로 인을 친
역적행위로 평가는 사학자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태종의 탁월한 외교적 수완으로 평가 -
특히 악법 중에 악법인 서얼금고법(庶孽禁錮法)을 만든 왕이었지만 이조의 역사는 반천년이란 기나긴
연수를 누린걸 보면서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친청파와 친일파가 무엇이 다른지 소생은 모르겠음 

profile_image

최돈길님의 댓글

최돈길 작성일

면도날같은 코멘트 항살 항상 감사한 마음 간직하고 있네. 사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글이란 쓰고 나면
수치, 후회와 반복되는것 같네. 그러나 내 전공도 아니고 시세에 따라 내 개인의 관점에서 쓰다 보니 방향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경우가 많지.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에서 쓰고 있네. 글이란 코메트없이는 절대 발전하지 못하지. 앞으로도 좋은 코멘트 부탁하네. 바람소리 고맙고 또 고맙네 

profile_image

바람소리님의 댓글의 댓글

바람소리 작성일

고맙네
남다른 식견과 덕망을 지니신 친구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네
진심일세
날씨가 차졌네
고뿔조심 하시고 늘 건강 하시길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