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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 부농(富農) 농악(農樂)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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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오락 작성일 2019-12-11 06:46 댓글 2건 조회 9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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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농(富農)과 농악(農樂) DNA

일전에 전주한옥 마을에 고교 동창들이 1박 2일 동안 관광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제는 다들 자녀들이 장성하여 며느리 손주, 손녀들을 본 할아버지 할머니 커플 들이다. 이번에는 재경 동창들 부부동반으로 일곱 커플들이 참석했다. 고교3년 동안 맺어진 인연은 나이가 한두살 차이가 있어도 애착(愛着)된 친구들이지만 사회적 지위도 있었고 아내들도 동반 한 터이라 서로 호칭을 존중하여 부른다.

어이~임판사, 김사장, 장목사, 홍서장, 최총장, 사회적 지위도 다양했다. 성격과 정서와 직업과 고향이 다, 각기 상이(相異)하지만 오직 한 가지 공통분모는 젊은 날 같이 동문수학한 고교 동창이라는 끈이다. 이 고교학맥은 영원하다.

전주 한옥마을 구경거리가 꽤 많은데 여기 저기 세트장 마다 찾아다니다. 한 풍물놀이 마당에 머무르게 되었다. ‘農者는 天下 之 大本’ 이라는 깃발을 휘날리며 꽹과리 징, 북, 장고소리 4대 악기에 맞추어 신명나게 상모를 휘 두루며 순간순간 양반, 상놈, 대감, 포수가 나타난다. 장르마다 환호성을 울리며 기뼈 즐긴다.
나도 어린 시절 많이 목격한 풍물놀이 농악대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 머물지 않고 농악놀이 마당을 떠나 성당건물이며 조각물 유래를 돌아 보고 소원의 기도도 드리고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한 친구는 장시간 그 농악 놀이에 몰두되어 푹 빠저 도무지 움직 일려고 하지 않는다. 그 와이프의 말인즉 자기 ‘남편은 항상 저렇게 농악을 보면 사족(四足)을 못 쓴다’는 것이 였다. 그 아내를 향하여 나는 그래요, 아마도 당신 남편은 어린 날 아버지와 ‘관계’에서 저 ‘농악’과의 깊은 추억이 많이 서려 있 것 같습니다.

직업적인 심리학이 발동되어 검증에 도립했다. 뭔가 저 친구 피 속에 아버지의 DNA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에게 연유를 물러 봤더니 그의 아버지가 마을 농악대 상수 잡이였다고 한다.
그렇치 우리는 좋던 싫던 부모님의 DNA, 환경적 요소, 형제들과 관계, 어린날에 자라온 흐름을 보고 그 원 가족을 검증해 보면 그 사람을 대충 알 수 있다.

나 역시 객지생활 40년에 내직업과 관계없이 귀농 귀촌을 하게 된 원인은 헨리 나우웬의 영적인 영향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부농 DNA가 내 몸속에서 일부 발동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생물학적 인간 DNA는 천연적이고 본래적인 습성이다. 마치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하여 고개를 내 밀 듯’ 인간 심연 깊은 곳에서 저절로 우러나온다고 말 할 수 있다.

내 얼굴도 젊은 날에는 전혀 형제 부모를 닮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요즘 거울을 보면서 내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형상이 합성된 모습을 찾아 낼 수 있고, 내 얼굴에서 형님의 형상도 찾을 수 있어진다.

싫건 좋건 씨종자(種字) 못 속인다. 농작물도 씨종자가 좋아야 충실한 작물을 수확 할 수 있기에, 작년에 마늘씨는 진부 시장에 가서, 옥수수, 감자씨는 면사무소에서 우량품종을 구입하여 왔다.

그것은 내 피 속에도 그 토록 부친이 소망하던 부농 DNA가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친도 젊은 날에는 객지에 나가 교사로 생활하시다가 할아버지의 부름에 고향으로 귀농하여 정미소와 농사를 겸하시며 밤낮을 모르시고 근면하게 일한 결과 마침내 ‘부농의 꿈’ 을 이루었다. 부농 만세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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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욱빈님의 댓글

임욱빈 작성일

장목사님!
우리들의 모습 재미있게 설파하셨네요.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소생의 행동에 심리학적 접근법으로 이해, 설시해준 목사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그 때에는 그 소리가 그렇게 싫었는데....왜 우리 집에서 저렇게 노실까?....

부친께서는 상쇠(쾡과리)를 칠 줄 아시지만 직접 치시는 모습은 보지 못했어요.
다만, 농악대를 이끌고 강릉 단오제 등 참여하는데 리더역할을 하셨지요.

나이 들어가니 어느새 내가 아버지의 자리에 제가 서 있더군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살아생전에 전하지 못했지만요.....

당시 농경사회에서 즐길만한 놀이문화는 농악이 최고였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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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락님의 댓글

해오락 작성일

아~~ 그 이야기가 임국장님 ! 이야기군요 난 ~ 상수, 우두머리 수 자인가 ? 했던니 쾡과리 군요
  난 무명으로 글을 썼는데 주인이 나타 났군요! 감사 합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