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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메밀꽃향기- '하룻밤의 사랑'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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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6-09-11 15:24 댓글 0건 조회 6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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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내내 오락가락하던 비가 출발을 앞두고 다행히 멈추었다.
교가와 Key-K의 우렁찬 함성을 잠실벌에 남긴채 관광차는 흰연기를 시원하게 뿜으며
고속도로를 들어섰다.
'우리 어디에 앉을까?
옆에 친구가 가만히 속삭인다. 누가 들으면 큰일이라도 날듯.
'선배님들은 한분도 않오셨지? 그럼 당연히 앞으로 앉아야지.
친구가 혀를 찬다.
'허어~우리 벌써 그렇게 됐나?'

만나면 무작정 즐거운게 동문이였다.
잘생기고 언변좋은 용산엉아는 마이크를잡았다 하면 차량안을 금새 노래와
박수소리로 진동시킨다.
'월남의 달밤' '유정천리''번지없는주막'으로 내리 세곡을 연창하는데
나같은 천하의 음치노래를 듣으면서도 앵콜을 요청하는게
바로 우리 동문의 깍듯한 예절이고 짙은 애정이다.

흥정계곡은 맑은 물소리와 싸아한 초저녁 바람으로 우리를 맞았다.

전국각지에서 오늘의 행사 참석을 위하여 수많은 동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활활타오르는 캠프파이어는 밤하늘을 수놓았고 한잔술로 회포를 푸는 기별멍석자리는
환희 그 자체였다.
선배도 만나고 후배들도 만나고 인테넷상에서 필명만 들었던 불량감자와 그의 형인
광해군도 만났다.
무엇보다도 그토록 오매불망(?)하던 cj 명희씨를 만났을때는 오래전 잊었던
첫사랑을 다시보듯 가슴이 출렁거렸다.
약속대로 세잔의 천일취를 그녀는 사양않고 마셔서 우리의 만남을 더욱 빛내줬다.

좋은 사람들과의 자리는 시간을 멈춘다.
마주 권하는 술잔은 수를 헤아릴수없었고 주고받는 정담은 삼경을 넘겨도 그칠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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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허리는 온통 메밀꽃 밭이여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려놓은듯이
흐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효석'(가산 이효석 선생)은 소설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봉평장터는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옛날 2일7일장이 열리던 시골장은 아직도 그 정취가 곳곳에 남아있었다.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와 하루밤을 보내기위해 서성이던 난전이 저곳 어디에
있었을까?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였어....

<메밀꽃 필무렵>의 허생원은 성처녀와 함께보낸 하루밤을 이렇게 기억한다.
장돌뱅이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와 우연히 마주친 날도 바로 장이 선 날이였다.
봉평장날, 객주집 토방에서 잠을 못들던 허생원은 메밀밭 가득한 개울가에서
그녀를 만났고 물레방앗간에서 하루밤 인연을 맺는다.

소설속 단 하루밤이였던 첫사랑의 아름다운 사연은
소설속 여흥을 타고 현실로 닥아온다.
달빛아래 허생원이 늙은 당나귀와 함께 다리를 건너다 빠졌던 개울-
그 개을을 건너면 축제의 주무대인 메밀꽃밭이였다.
4만평 하얀 들판을 빼곡히 메운 메밀꽃은 효석의 표현처럼 숨이 막혔다.
허리를 굽혀 메밀꽃과 눈높이를 마추면 그것은 하얀 솜사탕 같기도하고
소복히 쌓이는 함박눈 같기도 하다.

흥정계곡이 흘러내린 흥정천은 섶다리로 호젓하게 연결되어있어 더욱 분위기를 돋운다.
술에취해 비틀거리는 자신을 부축하고 고삐를 잡는 '동이'가 왼손잡이라는걸
취중에도 허생원은 재빨리 알아챈다.
동이가 자신과 성처녀가 하루밤 맺은 인연의 끈이였다는것을 아는순간
허생원은 어떤 표정이였을까?

...헛기침을 두어번하고 허생원은 다시 나귀 위에서 조는 시늉을 했다.
마치 아무것도 못본 양....

- 나 라면 이렇게 수습할듯 한데 효석은 어찌 했을까.

소설속 장면들은 메밀꽃밭 주위에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허생원의 길동무였던 당나귀가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내며 거리를 내닫고 있었고
'잊지못할 밤'의 배경이 됐던 물레방앗간도 나귀우리 뒤편에 자리잡았다.
이렇듯 봉평읍내는 '이효석'의 자취가 가는곳마다 품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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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 이효석 선생의 동상이 장터옆에 서있다.)

메밀국수집을 운영하는 동문의 배려로 나무탁자에 올라온 봉평의 명물인 '메밀꽃 술'은
칼칼한 메밀국수를 안주로 해서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가 않았다.
둔덕아래서 은은히 픙기는 메밀꽃향기가 너무 정겨워서 인가.
아니면 허생원이 성처녀가 벌린 주막에서 애잔한 옛추억을 회상하며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던술이 바로 이 메밀꽃술이 였기 때문인가.

좋은 하루는 이렇게 금새 지나갔다.

아쉬운 강릉 동기들의 손짓을 뒤로하고 귀경하는 길에는
허생원의 동무였던 늙은 당나귀의 요령소리가 끊임없이 뒤따르고 있었다.
하얀 메밀꽃 향기와 애끓던 하루밤의 사랑도 모두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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