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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월남전 참전이야기(11)....불타는 정글-홍길동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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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6-09-29 14:27 댓글 0건 조회 6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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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의 생명은 전과(戰果)보다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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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로 부터 가늘게 이어지던 숲이 학교운동장만큼 둥그렇게 펼쳐저 있고
겨우 한사람 정도가 풀섶을 헤치며 다닐만한 소로가 이리저리 그곳을 중심으로
사방에 연결되어 있었다.
미군 특수정찰기가 인체로 부터 발산되는 암모니아가스량을 측정해서 얻은
첩보에 의하면 집한채없는 이 들판속에 베트콩이 많이 숨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2개 대대병력이 출동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그만한 분지형태의 한눈에 볼수잇는 이 들판에 베트콩이
숨어있을곳은 없는것 같았지만 우리 부대는 벌써 사흘동안이나 주둔하고 있었다.

낮이면 땡볕을 피하기 위해 숲 가장자리에 텐트를 쳤고
밤이면 소대단위로 원을 그려 매복을 섰다.
병사들은 C-레이션 깡통 뚜껑사이에다 사방에 드믄드믄 자라고 있는 고추나무에서
따온 연필굵기만한 고추 몇알을 작두질해서 햄속에 넣은후 고체알콜에 끓였다.
유달리 혀를 쏘는 매콤한 고추맛이 입맛을 달구었다.

닷세가 되던날 갑짜기 많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월남의 비는 언제나 장대비였다.
밤새 오고 아침에도 낮에도 비는 그칠줄 몰랐다.
매복방커속에서 온몸을 웅크린채 모래자루에 턱을 괴고 멍하니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엊그제 받아본 어머니를 편지가 한자한자 눈앞에 떠오른다.
이때,바로
옆에있던 무전병 박상병이 내 옆구리를 가만가만 찌르면서 속삭였다.
'소대장님! 저기 좀 보십시오.
땅속에서 연기가 나지 앟습니까?'
'어디? 어, 그렇군. 이봐! 김하사! 수색해봐!.
김하사가 판초우의를 입은채로 낮은 포복자세로 살살 기어갔다.
'소대장님! 이거 땅굴입니다!'
덮개를 감쪽같이 위장해놓고 그 속에 숨어서 숨을 쉬기위해 나무가지 사이에 위장해
꽂아놓은 대롱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솟아 올랐던 것이다.

닷새동안 베트콩은 땅밑에서, 한국군은 바로 그 땅위에서 같이 생활해 왔던것이다.

이 기막힌 내용은 곧바로 연대본부에 무전으로 보고됐다.
보고를 받은 연대장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즉시 공격하라!'
단 1분간의 생각할 시간도 갖지앟고 기계처럼 내린 명령이였다.
병사들은 아침에 발견한 아지트의 입구를 향하여 수류탄을 던져넣었다.
폭발이 시작되자 땅굴에 숨어있던 적은 여기저기서 뛰쳐나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서로 맞붙어싸우기 때문에 누가 유리하고 누가 불리하고 하는 상황이 아니였다.
한국군도 베트콩도 수십명의 사상자가 났다.
시체들로 부터 흘러나온 피가 장대같은 빗물에 씻겨 뿌옇던 흙탕물이 붉게 물들었다.
퉁퉁부은 시체조각들이 강가의 나무가지에 걸려 이리저리 맴돌았다.
비참한 전투였다.

허지만, 이것은 치루지 않아야 될 전투였다.
땅속에는 베트콩-땅위에는 한국군-
이런 상황은 누가보아도 한국군에게 유리한 것이였다.
지휘관은 이 유리한 상황을 잘 활용하여 어떨게 하면 병사를 상하지 않게하면서
소기의 전과(戰果)를 올릴수 있을까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했었다.
지휘관이 이 상황에서 문제를 조금라도 고민했다면 길은 매우 쉽고 방법은 많았을 것이다.
가장 쉬운것은 숲위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는 것이다.
불길을 피해 강가로 달아나는 적은 손쉽게 우리 사격권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미군 전투기를 부르면 10분내로 날라올수 있을것이다.
전투기가 손바닥만한 숲속을 뒤집어 놓는동안 한국군은 멀리서 지켜보다가
살아남은 잔병을 소탕하기만 하면 되는것이다.
그런데도 한국군 지휘관은 불쌍한 병사들부터 먼저 투입했다.

병사를 사랑하지 않는 지휘관은 없을것이다.
허지만, 많은 전투를 지켜보면서 그것을 실증해준 지휘관은 거의 없었던것 같다.
솔직히 많은 지휘관중에는
'전과'가 '병사'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홍길동작전 참가/백마 '지만원' 전우 회고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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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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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7월 9일부터 8월 26일까지

백마사단과 맹호사단 2개사단을 투입하여

주월 한국군 전술책임지역을 위협하는 월맹군과 베트콩 게릴라들의

은거지 소탕을 위한 선제공격으로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 작전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으며 월맹군의 상부 지휘체제 붕괴와

베트콩들의 전투능력을 손괴시켰으며 VC게릴라들의 은거지를 색출하여 소멸시켰다.

적들이 출몰하던 1번국도와 6번도로의 안전을 확보하여

자유월남 주민들의 안전을 보호하였다.

이 작전으로 적사살 625명, 포로 88명, 귀순 26명, 소화기 348정,

공용화기 84문등을 노획하는 다대한 전과를 올렸다.


주월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중장'의 진두 지휘하에

"통트레"와 "쿵숀" 지역일대에 집결중인 월맹군 5사단 95연대와 베트콩 85연대 및

지방 게릴라 2개중대에 대한 선제공격을 목적으로 실시한 작전이었다.


아군들의 기동력을 최대한으로 동원하여 분산되어 있는 적의 은거지에

일제히 불시에 신출귀몰하는 "홍길동"처럼 적을 급습하여 적의 사기를 제압한 후

완전히 섬멸하는 작전이었다.


위에 열거한 노획물 외에 무전기 26대, 발전기2대, 교환대 2조,등 큰 전과였다.

아군의 피해는 전사 27명, 부상 62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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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대의 VC수색작전)




'홍길동작전'은 이보다 4개월전 투이호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오작교작전'과
더불어 백마.맹호의 2대합동작전으로 불리워진다.
주월한국군의 파월이래 두번째 대작전으로 아군의 경미한 손실에 비해
적은 치명타를 입힌 주도면밀한 작전으로 월남전사에 기록된다.
특히 이 작전으로 이미 확보된 퀴논과 나트랑을 잇는 군사요충지며 보급수송로의
동맥인 1번국도의 안전성이 재정립되어 한국군의 원활한 작전수행은 물론
미군과 월남군의 군사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작교와 홍길동 이 두작전은 한국군의 월남전사에 길이 남을
명전투로 기억될 것이다.



(홍길동 작전'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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