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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어찌 이런 인생도 있는가 김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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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돈길 작성일 2017-04-08 22:57 댓글 1건 조회 5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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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 이런 인생도 있는가! 김해영      2017.4.7

지난달 모 신문사 B논설실장께서 책 한 권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책 팔아달라는것인가? 또는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그런가? 실제로 읽을 깜이 되는지 여러가지로 궁금했다. 여하튼 교보에서 책을 구입하러 봄비 맞으며 서점에 갔다. 전철안에서 책의 추천서를 조금 받는데 내용보다 저자가 장애인이라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해 집에 도착하여 읽기 시작했다. 책 제목은 『청춘아, 가슴뛰는 일을 찿아라』 저자 김해영이다.


 대개의 경우 책을 읽기 시작하면 재미없는 책은 며칠이 지나도 못읽는 경우도 있다. 책은 대개 읽으면 웃음과 긴장과 흥분과 감정억제된 기분에서 읽는다. 그러나 김해영(이하 해영이) 책은 쉼없이 한번에 모두 읽었다. 필자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적이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어찌 이런 인생도 있는가!”


 내용을 요약하면 부모님과 5남매의 장녀이다. 아버지는 주정꾼이고 자살했다. 해영이가 13살에 아버지가 해영이를 던져 척추를 다쳤다. 그때부터 성장이 멈취 신장은 134cm. 지금까지도 134cm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남편의 죽음은 너 탓이야. 심지어 식칼로 죽이려고 협박도 했다.

해영이는 14살의 나이에 홀로서기를 작심했다. 첫 직장이 한의원의 집 가정부로 월 3만원으로 시작했다. 3만원중에서 千字文을 구입했다. 이중에서 800자 이상을 소화했다. 그리고 다시 그 집에 오는 반상회 회보를 보고 ‘무료직업훈련생모집’ 광고를 보고는 기술을 배워야한다 것을 마음먹었다. 이것이 해영이의 배움의 첫걸음이 되었다. 1980년 한남동 직업전문학교에 6개월 과정의 기계편직물을 마치고 용인의 하청공장에 취직을 했다. 월급도 2∼3배 더 받게 되어 주위 언니께서 책을 팔아달라고 해서 구입한것이 四書三經이다. 사서삼경은 공자의 가르침이 나오는 인과 예, 충, 효가 나오는 책이니 훌륭한 교사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사서삼경을 통해서 아버지로 인한 134cm, 어머니의 확대, 어린 동생들과 소원하게 자란것을 생각하면 증오, 슬픔, 미움 등 이 책을 통해서 혼들리지않고 성장할 수 있었다.


 다시 일하고 배울수있는 곳이 장애인이 모이는 명휘원에 갔다. 여기서 더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초등학교 졸업으로 다시 1983년에 전국기능대회에서 금메달 획득과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과 악수도 했다. 척추장애인으로서 학교 수업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일반인들은 전혀 이해못할 세상이다. 이 과정을 거쳐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남미 콜롬비아에서 열린 세계 장애인 기능대회에서 금메달도 획득하였다.

다시 공부에 자신감도 붙고,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대검반에 목적을 두고 도전하였다. 7개월 동안 공부하여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1987년에는 산업연수생이 되어 일본의 지바현으로 갔다. 일본어도 서툴지만 과거 식모살이하면서 읽은 천자문과 사서삼경이 도움이 되어 일본어는 쉽게 터득했다. 그리고 해영이는 책을 폭넓게 읽기 시작했다. 안병욱, 김형석, 김동길, 백범 김구선생, 토인비, 간디의 자서전, 돈키오테 등 특히 성경책에 매력을 느껴 열 번 이상 통독을 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중 교회선교단체에서 아프리카 보츠와나 직업학교에서 양재 및 편물에 대해 자원봉사자모집 광고를 보면서 보츠와나에 가기로 결심을 했다. 주위에서는 10년이나 편물계통에 종사하여 먹고 살만한데 ‘너 미쳤구나’ 라고 하였다. 그러나 1990년 12월 아프리카 보츠와나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대략 오드리 헵번과 우리나라 톱 탈렌트 김혜자이다. 이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인간으로 할수 없는 마지막 직업이 아프리카의 생활이 었다고 한다. 뜨거운 햇빛, 언어, 음식, 치안, 바람, 질병 등은 너무나 힘든 세상이다. 살아있는 임신부의 배를 갈라서 남자인가 여자인가를 내기를 하는 정도이다. 보츠와나에 도착하여 직업훈련생을 가르친다고 하는것이 어디 하나 쉬운것이 없었다. 드디어 학교는 서서히 교사도 학생도 떠나고 폐교 직전되었다. 그러나 해영이는 학교에 책임을 지고 한국과 일본에 지원의 손을 뻐쳐 편물기계, 물, 전기도 들어오고 학생수도 증가하였다. 교장선생님이 되고 학생 수가 80명까지 늘어나는 등 정상적으로 되었다. 이제 아프리카 생활이 10년이 넘자 다시 국제전문사회복지사의 꿈이 시작된다.


 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학비, 주거비 등 어느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99%의 정직, 99%의 성실과 1%의 노력이라는 것이 미국사회이다. 주위에서는 “힘 내세요” 또는 “기도해 드릴게요” 한남직업학교 등 지원의 손길이 있었다.

드디어 미국 컬롬비아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콜롬비아대학은 아이비리그와 상류층이 주류이고 남미, 아시아, 흑인은 소수에 불과하고 종교대학이라도 종교 냄새는 전혀없고, C학점이 없다 B학점은 F점수나 마찬가지로 유명한 대학이다. 그러나 해영이는 정직과 성실로 밀고 나갔다.

석사과정도 1년에 마스트하고 2010년 5월 졸업식을 했다. 미국 공부는 토론과 질문이 많고 자기 소개를 발표할 기회가 많다. 해영이는 134cm의 장애자, 아프리카에서 14년의 자원봉사, 맨주먹으로 미국의 도전은 세계 최고의 스펙으로 교수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필자는 80년대 초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보다 미국의 유학길에 유리한 조건에 있었다. 토플 800점 만점에 550점을 받기만 하면 톱 10 이내의 대학에 가족과 함께 먹고 자고, 등록금, 항공료 등 전혀 걱정할것 없는 조건임에도 놀기 좋아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해영이에게 한 없이 부끄럽고 우리의 어린딸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이 글을 읽고 요즘 청년들이 낙오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기를 바란다.

  지금쯤 해영이는 부탄을 비롯 지구촌이 그의 집이다. 어느 교민은 “종자돈 2만달러” 기부와 “월급을 받지않고 일하기” 교수님과 이별, KBS 1TV 아침마당 출연 등은 필자의 게으름으로 소개를 못해서 아쉽다.

해영이는 “인간은 인간이라서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사람이라서 값어치가 있는 것이죠. 그렇고 그런 인생은 없습니다.”

                                   37기 최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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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님의 댓글

바람소리 작성일

오장육부가 멀쩡하고 건강하게 인생의 황금기를 살아온 나에겐 감동 이전에 전율 같은 충격을 받다.
오드리 햅번과 김혜자, 그리고 김해영으로 이어지는 신성한 영역에 대한 동경도 없진 않았지만 접근불가라는 체념으로 자위해 버린 내 자신에 대한 반성도 이미 놓혀버린 버스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내 자신만이라도 제대로 가누고 살자로 움추려든 공벌레 마냥 겨우 겨우 연명하고 있다
넘치는 것은 절제하고 부족한 것은 보완하며 그저 평범한 평균치를 유지하는 것이 득도(得道)거니 다짐하며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