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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 하루 한가지에서 퍼옴(배법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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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부름꾼 작성일 2006-05-26 10:40 댓글 0건 조회 4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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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무명(無明)의 삶이여....
이름: 배헌영

  며칠 전 우연히 장애인들과 그리고 그분들을 인솔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두 분과
하루를 함께 하면서 내가 얼마나 나만의 굴레를 지키는 아집(我執)과 겉치레에 치
중한 삶을 살아 왔으며 또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 들어서며 거울에 비추어진 나를 보면서 왠지 나는 안도의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천명을 아는 나이라는 쉬흔을 넘기도록 살아오면서 별로 멀쩡
한 내 육신을 고맙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 걷고 있었던 내 다리가 그리고
자유로이 움직였던 내 팔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그날 나는 내가 누리는 이 육신의 은혜로움이 진정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잊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았다는 연기(緣起)법이 진실로 진리(眞理)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
분께서 설하신 법화경(法華經)의 성구(性具)사상이 진리라고 한다면 바로 내가 밀고
있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사람이 나이고 또한 휠체어를 밀고 있는 사람이 바로 휠체어
에 앉아있는 사람일 것이기에…

  나는 몇 시간을 휠체어를 밀고 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도 한 순간도 그와 동체(同體)
라는 큰 자비심(慈悲心)을 내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론과 지식이 자리잡은 머리로는 그의 모습이 바로 어떤 순간 내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 하면서도 지혜와 본성(本性)이 자리하고 있다는 내 가슴과 몸은
그와 하나가 되어보지 못하고 하루를 마쳤습니다.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그날을 다시 반복해 보았지만 이론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점만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도 지금 이러한 마음을 내는 순간의 나는 악업(惡業)을 차단하고 서원(誓願)의
줄을 잡는 쪽에 서 있는 것이겠지만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 무명(無明)과 번뇌(煩惱)
에 휩싸인 중생으로 돌아가 있을 것입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또 다시 어떤 계기를 맞을 때 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처럼이
나마 선업(善業)의 인연 쪽을 향해 서있게 되기를 기원해봅니다.
미련한 이 중생은 돈오(頓悟)의 품성을 갖지 못하였으니 그렇게라도 한발씩 옮겨
중생계를 벗어나는 흉내라도 내 보는 수밖에…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석지명 스님의 한 말씀을 되뇌이며 자위해 봅니다.
“동쪽으로 기운 나무는 언제가 동쪽으로 쓰러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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