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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 뒤 늦은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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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7-04-05 18:28 댓글 0건 조회 7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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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빨리 나와 보세요.”

쾅~ 쾅~
“빨리 도장하고 포대 한 자루 갖고 쌀집에 모이시래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동네 아주머니들을 모두 불러 댔다.

“빨리요~ 빨리~.”
“늦게 도착하시면 정부미가 다 떨어진대요.”

어린 나이에 어찌 깜찍한 거짓말을 토해 낼 수 있었을까?

4월1일 만우절만 믿고 어린 나는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가며
거침없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잔뜩 굶주리며 정부미만 바라보고 살았던 그 시절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쌀집에 모여 들기 시작했다.

“이제야 정부미를 풀려나 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쌀집의 문을 열기만 기다리는 아주머니들의 술렁임이었다.

남의 집 담벼락에 바짝 기대 선 난 아주머니들의 행동을 숨어서 지켜보았다.

앗!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주머니들 틈 속에서 우리 엄마의 모습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손에는 나무로 판 자그마한 도장을 꽉 움켜쥐시고
포대를 옆구리에 끼신 채
꽃샘추위의 그 바람마저 정부미를 탈 수 있다는 마음 하나로 이겨내시면서
쌀집의 문만 열리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순간 마음은
“만우절인데.......만우절인데........” 하며 거짓말임을 밝히고 싶었지만
동네 아주머니와 우리 어머니의 간절한 기다림의 시간은
만우절을 핑계로 한 거짓말로 마무리하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누구야? 누가 도장 갖고 나오라고 했어?”
기다림에 지친 동네 아주머니들의 아우성에 밝혀진 이름은 바로 나였다.
갑자기 얼굴이 시퍼렇게 변해 버린 우리 어머니는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시기 시작하셨다.
그럴수록 내 작은 몸집은 남의 집 담 모퉁이에 기대어 더욱 웅크리고 있었다.

“어~휴 이집의 딸내미가 만우절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네.”
몇몇 아주머니는 웃기도 하셨지만
또 다른 아주머니들은 “잡히기만 해봐라.” 하시며 잔뜩 벼르시기도 하였다.
그러니 그 가운데 계시는 우리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그 날 매는 이미 벌어 놓은 터라 집에도 못 들어가고 동네 어귀에서 서성이며
그나마 수제비 한 그릇도 못 얻어먹고 배 골았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해마다 4월 1일이 돌아올 때마다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제라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으니 부디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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