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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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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6-10-28 12:18 댓글 0건 조회 8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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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고 하더니만
요즘 들어 친정 부모님께서 자주 편찮으신 곳이 많으시다고 하신다.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 모시고 병원을 다녀오다
편찮으신 것 말고도 불편한 점이 많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평소 절약 정신이 강하신 부모님들께선
병원의 위치도 모르시면서 택시비가 아깝다고 걸어가자고 하셨다.
노인네들 고집을 꺾지 못해 걸어서 병원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젊은 나는 걷는데 익숙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자식의 걸음을 따라오지 못하셨다.

병원에 여러 과를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니 마음부터 조급하여
난 걸음이 빨라질 수밖에 없는데
부모님들께선 당신들 마음만 앞서셔서 굳이 걸어가시겠다고 하시고는
마음만 앞서신 탓에 결국 딸자식의 걸음을 따라잡지 못하셨다.
앞서가는 딸자식이 뒤돌아볼 때마다
부모님은 어서가라고 나에게 손짓하셨다.

마음이 조급해 혼자 앞서가다 다시 돌아와
절뚝거리시며 불편해하시는 부모님께
임시 앉으실 곳을 마련해 드리며 속이 상한 나머지 한마디 퍼부어댔다.

“그러기에 택시를 타자고 하니 웬 고집을 세워요?”
이런 말을 퍼붓는 내 마음도 아프기만 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다리가 덜 아픈데........”
딸자식한테 미안하신지 말끝을 흐리시며 집에 두고 오신
자전거 타령을 슬며시 하셨다.

부모님 고집대로 힘든 걸음으로 고생하시어 병원에 도착하였다.
아프다고 하실 때에는 언제이시고
이번엔 검사비가 비싸다고 웬만한 검사는 하지 않으시겠다며 또 고집을 부리셨다.

그런 부보님 마음을 알기에 항상 앞장서서 미리 경비를 지불하고 다녔는데
이번엔 딸자식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셔서 큰마음 잡숫고 병원비를 마련해오셨단다.
하지만
딸자식만 따라다니시며 생활하신 터라 물가에 어두우셔서
그 사이 간호원에게 검사비용부터 물으시더니만 깜짝 놀라시더니
간호원에게 극구 검사를 하지 않으시고 약만 달라고 하셨다.

“할아버지 검사를 받으셔야 약을 드리지요.”
간호원의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않으시고 약을 처방해 달라고 또 고집을 부리셨다.

어렵게 결정하시어 이곳 병원까지 도착하셨는데
여기서 주저앉게 되는 것이 속상해서 부모님을 설득해드리려다
난 눈물을 찔끔 흘렸다.

어디까지가 효도의 한계일까?
끝이 없는 보살핌으로 불편하신 점 없이 곱게 모셔야하는데
매사 경제적인 부분이 걸림돌이 될 때면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나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도 이와 같은 심정이셨겠지?
없는 살림에 약한 몸으로 태어난 자식이 아프다고 하면
어디서든 없는 돈을 마련해 오셔서
딸자식 살려 보려고 안간힘을 쏟고 살아오신 부모님 심정도
모두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이셨겠지?

궁리 끝에 아버지께 한 말씀 던졌다.
“아버지 카드로 하면 할인이 많이 된대요.”
간호원에게 눈을 찡긋거리며 얼른 카드를 내밀었다.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두 분은 딸자식의 행동이 옳은 줄 아시고 더 이상 고집을 부리시지 않으셨다.
다행히 나의 잔꾀도 꽤나 효험이 있었다.

검사를 마치시고 다음 검사를 위하여 다른 병원을 찾다보니
그만 점심시간이 걸려 버렸다.

내 이럴 줄 알았기에 마음속으로 조마조마했는데
따라오시지 못하시는 걸음으로 걸어가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더니만
결국 간발의 차이로 점심시간이 겹쳐 버린 것이다.

‘검사를 위하여 아침까지 굶으신 두 분이 얼마나 배고프실까?’
하는 생각에 병원 점심시간에 맞추어 부모님을 모시고 근처 식당을 찾았다.
이번에도 밥을 사먹지 말고 집에 가서 먹고 다시 병원에 오자고 또 고집을 부리신다.
거리가 얼마인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차만 있었으면 점심시간 전에 다 돌아볼 수 있었을 것을
하필이면 이럴 때 차를 팔아가지고 부모님께 불편을 끼쳐 드린다는 생각에
내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 힘들게 하실래요?”
못난 것은 내 자신인데 부모님께 공연히 언성이 높아졌다.
죄송한 마음에 난 다시 자세를 낮추었다.
“저도 배가 고파요. 아버지 밥 한 그릇 사주실래요?”
부탁하는 마음으로 식사하자고 말씀드렸더니
딸자식을 위해 쓰시는 돈은 아깝지 않으시다하시며 식당을 찾으신다.

당신들은 제일 싼 음식을 고르시고는
“맛있다.” 라는 말씀을 연발하시며 드셨다.

씁쓸한 점심 식사와 병원의 일을 모두 마치고
저녁엔 퇴근한 사위의 차로 모셔다 드리겠다고 하였더니
비싼 기름 값 들이고 왜 자가용을 타느냐고 또 고집을 부리셨다.
멀미하실까봐 염려되어 만류하는 딸자식의 마음을 저버리시고
결국 두 분은 버스를 타고 손을 흔들며 훌쩍 내 곁을 떠나가셨다.

“집에 도착해서 전화할게.”
차창 밖으로 소리 지르며 던지신 한 마디의 여운이
나를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였다.

속이 상한 마음에 주책없는 눈물이 흘렀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노인네들 고집하고는.......”
하고 혼잣말처럼 지껄이며 난 그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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