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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張承業 .장승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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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찬수 작성일 2009-03-04 01:51 댓글 0건 조회 1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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陶淵明愛菊圖

이 작품은 국화를 사랑했던 시인 도연명(365~427)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하늘색 옷을 입은 도연

명이 책이 수북이 쌓인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동자가 소담스럽게 핀 노란 국화 화분을 보여 주고

있다. 도연명의 얼굴은 광대뼈가 두드러졌고 턱이 넓으며 입술이 두터운데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

금고 있다. 이런 인물의 용모는 장승업이 즐겨 그리던 것이다. 또한 옆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동자는

더벅머리에 가는 눈매, 꼭 다문 입술의 재미있는 모습인데, 역시 장승업이 즐겨 그리던 인물상이다.

한편 도연명 옆에는 마른 나무, 혹은 괴석과 같은 기이한 받침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대나무와난초

를 심은 화분이 얹어져 있다. 이런 기이한괴석, 혹은 나무 등걸은 중국 명대 진홍수의 그림에서 자

주 등장하며, 이후 청 양주팔괴나 해상파 화가들에 의해서 계승된다그리고 당시 중국이나 조선에

퍼져 있던 일종의 서화금석(書畵金石) 수집과 골동취미와도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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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下老僧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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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僧觀龍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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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問仙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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仙人採芝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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雙馬人物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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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士洗棟圖

이 작품은 중국 원말사대가(元末四大家) 중의 한 사람인 예찬(倪瓚)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예찬

은 결벽증이 매우 심하였는데, 자신이 손대는 것을 모두 청결하게 유지함은 물론이고, 계속해서 손

을 씻었으며 하인들을 시켜 정원에 있는 오동나무를 매일 깨끗이 닦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림은 상

·하로 2분되어 있다. 화면 윗부분에는 과장되게 굴곡진 나뭇가지와 누렇게 물든 나뭇잎들이 돋보이

는 키 큰 오동나무가 화면 전체를 압도하며 서 있고, 나무 밑둥에는 한발을 나무에 딛고 열심히 나

무를 닦고 있는 동자가 보인다. 이와 대칭되는 화면 아래쪽에는 괴석 위에 걸터앉은 예찬이 동자를

쳐다보고 있다. 종(縱)으로 긴 화면의 아래에서 위쪽 끝까지 시선을 유도하는 능숙한 구도와 공간

활용이 탁월하며, 세련되고 적절한 설채(設彩)와 선묘(線描) 솜씨 또한 뛰어나다. 화면 위쪽의 제목

은 오원의 제자인 심전 안중식이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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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人間年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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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羲之觀鵝圖,撫松盤桓圖

왕희지와 도연명을 소재로 한 고사인물화이다. 이 두 인물은 장승업이 즐겨 그렸 으나 이 작품

처럼 정세한 백묘법이 구사되어 있는 것은 드물다. 우선<왕희지 관아도>는 앞서 고려대 박물관

소장<왕희지>와 같은 주제를 다룬 것이지만 여기서는 왕희지가 물가 바위에 기대 앉아 부드 럽

게 헤엄치는 거위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그려져 있다. 왕희지의 얼굴에 드러난 신비로운 미소,

기대 앉은 자세의 자연스러움, 유려한 선묘로 묘사된 의습선의 아름 다움, 그리고 헤엄치는 거위

의 생동하는 모습 등에서 장승업의 뛰어난 기량을 엿볼 수 있다. 뒤쪽에는 기둥이 유난히 높은 기

와집이 있는데, 전혀 사실적이라 할 수는 없으나 오히려 과장과 단순화를 통해 생동감을 획득 하

였다. 한편 이와 동일한 소재를 견본담채로 더욱 정밀하게 묘사한 작품도 소개된 바 있다. 화면

위에는 19세기의 화가 춘방(春舫) 김영(金瑛:1837∼?)의 화제(畵題)가 적혀 있다. "두 마리 거위

목을 빼며 다가옴을 보자, 가슴 속의 묘한 생각 저절로 어우러지네. 아득히 천년 후에 벗을 숭

하니, 이 뜻을 아는 이는 다만 황정견뿐이라네. 오원이 그리고 춘방이 보다." 도연명은<귀거래

(歸去來辭)를 읊으며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며 살았다. 이와

련된 여러 가지 일화들이 후대 회화의 소재로 애용되었는데, 이 작품은 그 중 "소나무를 쓰다듬

며 머뭇거림(撫松而盤桓)"을 그린 것이다. 역시 인물의 생기있는 표정과 보석처럼 정교한 소나

묘사가 돋보인다 김영의 다음과 같은 화제가 있다. "사안은 오히려 대나무를 키우고, 도연명은

슨 말로 벼슬자리를 버렸나? 만약 태평성대에 살아서 만난다면, 푸른 소나무 오래된 그림으로

아오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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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羲之,老子

이 작품들은 <인물영모 10첩 병풍>(도22) 중 두 폭(제9·5폭)이다. 매폭에 안중식의 화제가 있다.

이 중<황희지>에는 1879년(37세) 연기(年記)가 있어 중기의 인물화 양식을 판단하는 데 좋은 참

고가 된다. 왕희지가 산음(山陰)의 도사에게 황정경(黃庭經)을 써 주고 거위를 얻었다는 고사를

표현하였다. 황희지가 동자에게 거위를 안긴 채 수염을 쓰다듬으며 흐뭇해하는 장면이다. 인물

의 모습과 의습선이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필치로 그려져 있고, 진한 필선 위에 옅은 묵선을 잇대

어 강조하는 수법도 볼 수 있다. 이런 인물화의 묘법은 나중에 조석진과 안중식에 의해 계승되어

현대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아직 장승업의 원숙기 인물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기이한 안면, 신비로운 미소, 과장된 날카로운 의습선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노자>는 노자

가 청우(靑牛)를 타고 함곡관을 넘어갔다는 고사를 그린 것이다노자가 소를 탄 도상은 중국에서

는 송대 이전에 이미 형성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후기와 말기의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작품은〈왕희지〉에 비해 아주 생략된 필묵법으로 그려져서 마치 선종의 감필체(減筆體)도석인

물화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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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羲之觀燕圖

앞의 고려대박물관 소장 병풍 중 두 폭의 인물화와 양식적으로 유사한 작품들이다. 그런데 이 두

폭은 인물의 기본적인 도상이 중국 청 말 상해(上海)에서 간행된 화보인《시중화(時中畵)》에서

본떠온 것이다. 인물들은 유려한 선묘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는데, 나중에 안중식, 조석진에 의해

계승된다. 그리고 특히 이 두 폭에 사용된 도상과 동일한 것이 안중식의 작품에서도 남아 있어 흥

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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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水人物圖

산간의 개울가에서 두 인물이 서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그렸다. 나뭇가지의 일부가 화면 경계에

걸린 것으로 보아 원래는 더 큰 그림이었는데 가장자리가 잘려나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어떤 고사

인물화였는지 지금 상태로는 잘 알 수 없다. 화법상 장승업의 특징적인 수지법(樹枝法)인 옹이가

많은 줄기나 손바닥을 편 것 같은 가지의 모습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중년기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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