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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 정말 딱 걸리셨네.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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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7-02-28 02:24 댓글 0건 조회 9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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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링~

“여보세요.”
“어~휴~”
여보세요.…….라는 소리에 상대방의 대답은 어~휴 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연실 “여보세요.”를 외쳤습니다.
잠시 후에…….
“응! 나야.”
하는 나지막한 대답이 울 엄마인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깜짝 놀라 여쭙는 소리에 마음을 가다듬은 울 엄마는
목소리를 애써 태연한 척하셨습니다.

“내가 요즈음 동네 할머니들과 운동을 하고 있잖니.”
“그래서요. 어디 다치셨어요?”
깜짝 놀라 다그치듯 여쭙는 저에게
“아니.......그게 아니고.......”
하시며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답답하게. 그럼 뭔데요? 빨리 말씀해보세요.”
답답하다는 말씀을 들으신 울 엄마!
“네 아버지한테 쫓겨났다. 큰일 났다.” 는 말씀만 되풀이 하셨습니다.

사연인 즉
저수지를 끼고 동산을 몇몇 친구 분들과 매일 운동을 하시는 울 엄마
저수지에서 음식 장사를 하시는 친구 분 손에 이끌려
차 한 잔하고 가라는 제의를 받아들이셨답니다.
물론 나머지 일행들도 함께 하셨답니다.

그리고 차 한 잔과 담소를 나누던 중
장사를 하시는 친구 분의 남자 친구인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 오셨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동네 사는 아무개입니다.”
이 할아버님 여러 할머님들께 정중히 인사를 하시더니
“제가 오늘 한 턱 낼 터이니 재미있게 놀다 가시지요.”
하시더랍니다.

유흥 음식점에 음식만 나왔겠습니까?
술과 음악까지 나오는 바람에 못 드시는 술 한 잔을 받아 드셨답니다.
한 잔 받아 드신 것까지 좋았으나
음악이 흐르니 어찌 가락에 장단을 맞추지 않을 수 있으셨겠습니까?
(제가 꼭 울 엄마를 닮았는데요. ㅋㅋ)

“돌리고~ 돌리고~”
“있을 때 잘~혀. 그러니께 잘~혀.”
아 ~ 이러고 흥에 겨워 춤을 추셨답니다.

음악에 취해 돌고 도는 동안에도
머리에선 온통 울 아버지 점심 걱정이셨답니다.

그래도 조금 더 놀아보시려는 욕심에 핸드폰을 들고 음악 소리를 피해
“점심 좀 챙겨 드세요.” 하고 전화 드리려 바깥으로 나가셨답니다.

그 순간
울 아버지께서 울 엄마를 보시더니
자전거를 타시고 애타게 부르시는 울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 하신 채
쌩하니 집으로 가셨답니다.

열심히 풍악에 맞추어 돌리기를 반복하셨던 울 엄마
울 아버지가 유리사이로 지켜보시고 계신 것도 모르신 채
계속 돌리시기에 여념이 없으셨나 봅니다.

“아~이~고 ㅇㅇ 할아버지!” 하고 애타게 부르실 때는
이미 자전거 패달을 열심히 밟으시며 집으로 향하신 다음이었답니다.

모처럼 물 만난 제비처럼 음악에 흠뻑 취해
마구 돌려주는 대로 돌아갔을 뿐인데
정말 딱 걸리셨네. 끙~

울 아버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시다
그래도 친구들에게 간다는 인사는 하고 나오셨어야 하기에
다시 친구 분들과 함께 했던 장소로 가셔서
“난 이제 쫓겨났다네.” 하셨더니만
“뭐~이 나이가 칠십인 사람이 잠깐 놀았다고 쫓겨나는가?”
오히려 의아해 하셨답니다.

당연한 말씀이지요.

그 동안 울 엄마는 울 아버지의 레이다망에서 피해 보신 적이 없답니다.
자나 깨나 두 분이서 자전거를 함께 타시고
딸자식 먹 거리를 위하여 밭농사만 열심히 지으셨을 뿐이니까요.

젊으셨을 때
오죽하면 운동 좀 하시라고 제가 울 아버지 몰래
살짝 모셔다 노시는 장소에 계시게 하다가 다시 모셔 오곤 하였을라고요.
그럴 때마다 딸자식의 배려에 고마워하셨지만
모든 일이 한 때이더라고요.

어느 날인 가부터 다리를 저시며 당신 얼굴에 주름이 많아
남들 앞에 나서기조차 부끄럽다하시며
공식적인 모임 또한 모두 피해오시다 정말 처음 갖으신 시간이셨을 텐데........

그 연세에 쫓겨나신다고 근심어린 전화를 하시는 것이
자식으로서도 도저히 울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러나
부부로서 두 분이 살아오신 방법 중에 하나인 것을
자식으로서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라는
제 입장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설마 아버지가 쫓아내시겠어요?”
“아버지 성격 아시니까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세요.”
잘못도 없으신 울 엄마에게 이런 말씀드리는 것이 죄스러웠지만
부부간에 일은 부부가 해결해야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답니다.

다음 날 아침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야~ 네가 하라는 대로 했더니 금방 풀리시더라. ㅎㅎ”
“ㅇㅇ 할아버지! 내가 처음이잖우.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한 번만 봐줘요. 에이 처음 있는 일 갖고 뭘 그래요.”
이랬더니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하시며 없던 일로 하시더랍니다.

혼자서 일대일로 다른 할아버지를 만나신 것도 아닌데
그 연세에 어찌 그리 질투가 많으신지.
그야말로 사랑이 깊어서일까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시는 울 엄마가 갑자기 가여우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세 번의 안부 전화에
울 엄마는 이런 말씀을 남기십니다.

“그 날 이후 네 아버지 계속 날 감시하신다. ㅎㅎ”

엄마! 그리고 아버지!
누가 누구를 감시하고 사신다는 것이 피차 괴로우시겠지만
자식으로서는 그런 두 분의 모습이 제 가슴속엔
뿌듯함으로 남아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것 아시겠지요?
오래도록 제 곁에 그 모습 그대로만 사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추신: “있을 때 잘해.”(살아 실제 섬기기를 다 하여라.)
이 말 명심하고 잘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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