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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술,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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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8-04-21 13:37 댓글 0건 조회 16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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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未堂) 서정주는 당대의 미식가(美食家) 였다고 한다.
어떤 시인은 미당의 미식기질을 여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연관 시킨적이 있다.
하기사 미식이란게 뭔가를 감수성 있게 받아들이는 미묘한 떨림이 있어야 하니 미식가의
기질을 가진 사람은 여성을 느끼는 특수한 감각도 발달했다고 보아 무방할수도 있겠다.
어느 시인이 미당에게 "가장 맛있었던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 하더란다.
"내 평생 먹어본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음식은 전복삶은 물이였오"
해서 그 시인은 죽시 전복을 사다 삶아 보았다.
그러나 울어나온 물은 빛깔은 푸르뎅뎅하고 입에 넣으니 찝찌릅 하기만 할뿐 도무지 무
슨 맛인지 모르겠는데 미당은 그 액체가 뭐길래 최고의 맛이라고 현혹 되었을까?
생각해 보건대 그의 입맛을 끌어 당긴것은 '담백함'그것이 였던 모양이다.
지금까지는 지지고 뽂고 오만 양념에 범벅된 화려한 맛에 지친 그가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
에 선 누님같은 담백함에 홀딱 넘어간게 아닌듯 싶다.

그러고 보니 음식과 사랑은 많이 닮은 꼴이 있나 보다.
달콤할수록 몸에 해롭다.
담백할수록 몸에 이롭다.
오래되면 변질될 수 있고 한번 변하면 되돌릴 수 없으며
재료가 특출하면 별다른 양념이 없어도 그 자체만으로도 최고의 맛을 낸다는 것ㅡ
여기에 독특한 술한잔이 가해지면 그 황홀함은 또 어디 비할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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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일은 시선(視線)의 문제다.
어느쪽을 바라 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여기 두 연인이 있다. 10여년 전 그녀들의 븕은 20대로 거슬려 올라가 보자.당시 두 여인은
연애하고 있던 남자친구와 춘천과 서울에서 각각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쿵쿵 심장이 뛴다.이슬같은 작은 땀들이 주책없이 흐르고 연노랑 커튼은 제 혼자 신이나 춤
을 춘다. 막 잡혀 팔딱이는 생선처럼 젊은 몸이 긴장한다.곧 터질 고무공 같다. 사각 스치는
손짓에 살들이 혓바늘 처럼 돋는다.
휘릭 불이 꺼지고 살그머니 곁으로 닥아오는 그.....앗! 그런데 어라~ 벌써 아침이 아닌가?
손만 꼭 잡은채 멀뚱멀뚱 하룻밤을 보냈던 것이다. 둘다 !
이 일로 한 여인은 남자 친구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놈이라고 생각하고 웨딩케익을 잘랐다.
또 다른 여인은 그날로 그와 헤어져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자신을 여자로생각하지 않고
무시 했다는 것 ㅡ그럼 지금 그녀들은? 웨딩케익을 자른 여인은 '그날밤 조용히 지낼때 알아
봤어야 할텐데.으이그......' 투정 하면서 알콩달콩 산다. 또 다른 여인은 지금까지 혼자다.
당신의 시선은 어느 쪽인가? (박미향/자유2)

술과 사랑은 선택의 시선이 중요하다.
봄밤 홍매화 짙은 향기속에서 와인의 자주빛 유혹에 빠진다.
최고급 '러슈브르그랑끄루'나 '샤또브랑깡뜨냑마고'는 아니더라도 그 흔한 '보르도'나
'보졸레'인들 어떠냐.
와인을 선택하고 그 향기의 유혹에 빠지는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지...
살랑살랑 흔드는 유리잔에 사랑은 춤추고, 슬몃 맡아보는 냄새에 사랑은 황홀하고, 호롯 혀
끝에 음미하는 감취에 사랑은 정착한다. 한꺼번에 마시는 와인은 조급해서 선이 그어지고
너무 스로모션이면 희미해서 지칠것이니, 그 빠르고 늦음의 조절에 오묘함이 와인의 사랑
이어라...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와인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릴케)

갈색의 늦은 겨을밤 "너를 사랑해" 감미로운 사랑 노래 부르며 현란한 크리스탈로 시선을 돌
린다. 그안에 너를 안는다. 신이 내린 물방울 코냑의 갈색 향취속으로 ㅡ
나의 체온으로 너의 잔을 데운다.
그리하여 술잔 가득히 향이 퍼질때 그 오묘한 맛과 향을 아주 천천히 혀끝에 굴린다.
싸아한 감촉과 함께 신비로운 장미꽃 냄새가 목젖을 떨어 울린다.
코냑의 오케스트라....
'루이13세'가 아니면 또 어떠하며 '푸시니'나 '하디'가 아니면 또 어떠리.
'캬뮤'의 진한 갈색도 사랑스럽고 '헤네시'의 톡쏘는 향취도 나를 낙원으로 유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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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요리책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보면,
'밤먹기는 봄같이 하고 국먹기는 여름같이 하며 장(醬)먹기는 가을 같이 하고 술 먹기는 겨
울같이 하라'는 말이 있다. 밥은 따뜻한 것이 좋고 국은 뜨거운 것이 좋고 장은 서늘한 것
이 좋고 술은 찬것이 좋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 모든 음식에는 맞는 궁합온도가 있는 모양이다.
어디 온도 뿐이겠는가.
레드와인에는 부드러운 향의 단단한 치즈가 좋고 와인이 달수록 강한 향의 치즈가 좋은것
처럼 우리 술에도 안주에 좋은 궁합이 따로 있었다.
막걸리에는 수분이 적고 기름끼가 많으며 자극성이 없는 우거지 국이 좋고 소주에는 수분
이 많아 알콜을 희석시키고 기름진 음식으로위장에 부담아 덜가는 삼겹살이나 콩나믈 국이
좋다는 것은 주객이라면 불문가지다.
전통주를 볼짝시면, 송곡오곡주는 취나물 뽂음,구기주는 구기강정,국화주는 참치구이,유자
주는 시금치,과하주는 참나물,홍주에는 육포,백화주는 오절판,머루주는 겨자채,이강주에는
육회,복분자는 장어구이,두견주는 빈대떡,포도주에는 너나아비.....각설하고,
조선후기 문신 오도일(吳道一)은 서파집에 '고을의 기녀는 동동주를 마시라고 재촉하고 주
방의 아이는 농어를 또 잡았다고 알리네...'읊었으니 동동주에는 회가 제격일시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예전 젊어 연애를 할때 가끔 '내가 왜 이 여자와 사랑을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건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기도 하다.
내가했던 사랑의 맛은 어떤 것이였을까?
모르긴 몰라도 미당의 전복삶은 맛처럼 시원한 맛만 있었던건 아니 였을게다.
만약 지금 연애를 한다면 어떤 맛을 낼까?
혀를 마비시키고 뒷맛까지 들쩍지끈한 맛은 내지 말야 할텐데.

요즘 한창 모 여류시인과 사랑에 몰입하고 있는 그 어느 친구는 어떤 맛을 느끼고 있는지
장히 궁금하고 궁금해서 긁어 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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