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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칠보시(七步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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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雪中梅 작성일 2009-02-10 02:18 댓글 0건 조회 6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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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보시(七步詩)        <조식(曺植)>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콩을 삶는데 콩대로 불을 때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솥 안에 있는 콩이 눈물을 흘리네.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어찌 그리도 세차게 삶아대는가.

                                                                   
동서양의 역사 속에는 형제끼리 잘 지내는 미담(美談)도 많지만 반면에 형제사이의 불화로 평생을 마음고생하며 사는 사람들이 역사속이나 현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위의 당시(唐詩)를 쓴 조식(曹植)은 나관중(羅貫中)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위(魏)의 영웅 조조(曹操)의 둘째 아들로서 문장이 뛰어나며 큰아들 조비(曹丕)와 함께 중국 후한(後漢) 헌제(獻帝)의 건안(建安)(196∼220)때에 건안문학(建安文學)을 형성한 중심인물이다.

 건안문학(建安文學)이란 조조의 삼부자와 건안칠자(建安七子)라고 일컬어지는 7명의 문인(文人)들로 형성된 문인학파(文人學派)를 말한다.

 위(魏), 촉(蜀), 오(吳) 3국이 패권을 다투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를 읽어보면 의(義)와 명분(名分)으로 구분되면서 촉(蜀)의 유비(劉備)에게 의(義)의 비중을 두고 위(魏)의 조조(曹操)는 난세(亂世)의 간웅(奸雄)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삼국지의 중심인물은 단연 조조(曹操)다.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의 취향(趣向)이 다르겠지만 필자가 보는 조조는 난세를 리드해 나가는 경세치국(經世治國)의 능력도 중요하였지만 창검이 번득이고 목숨이 처참하게 버려지는 비정한 전쟁터에서 나타나는 그의 시문학적 소양(素養)에 크게 매료되었다.

 전편(全篇)에 흐르는 삼국지에서 처해진 굽이굽이의 상황아래서 시로서 심경을 토로한 조조의 시가 여러 편 있지만 오나라와 적벽대전(赤壁大戰) 을 앞두고 선상(船上)에서 지은 횡삭부시(橫朔賦詩)는 특히 유명하다

 이와 같은 조조의 문학적 감정 못지않게 당대 최고의 시작(詩作) 칭송을 받은 사람이 조조의 둘째 아들인 조식(曹植)이다. 조식이 그의 아버지를 위하여 지은 동작대부(銅雀臺賦)는 매우 유명하지만 문장이 너무 길어 다음에 소개할 생각이다.

 이런 문학적 재능이 높은 조식을 아버지 조조는 맏아들 조비(曹丕)보다 더 사랑하였다. 이로 인하여 정치적이나 형제간에 사랑이 없어지고 서로를 적대시 하게 되는 카인 콤플렉스(Cain complex-형제간의 적대 의식)를 갖게 되고 조조가 죽은 뒤 위왕(魏王)을 물려받게 된 조비는 인기가 좋은 동생 조식을 정치적으로 인간적으로 핍박하고 기회있는대로 제거할 명분을 찾게 된다.

 송(宋)대의 유의경(劉義慶)이 편집한 명사들의 일화집인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아버지 조조가 사망 시에 형 조비(曹丕)의 위협을 느껴 장례식에 불참한 조식(曹植)을 불러 불효에 대한 문책으로 자신이 일곱걸음을 걷는 사이에 시를 지어 내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명령한다. 이때 지은시가 위의 유명한 칠보시(七步詩)로서 형을 콩대에, 자신을 콩에 비유하여 형이 동생을 미워하는 형의 몰인정을 상징적으로 노래한 내용이다.

 즉 “부모를 같이하는 친형제간인데 어째서 이렇게 자기를 들볶는 것이냐”는 뜻이다. 위왕(魏王)인 형 조비(曹丕)는 이 시를 듣자 민망하여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여 동생 조식(曹植)을 용서하여 주었지만 이후 자두연두기(煮豆燃豆萁)의 말은 형제 불화와 싸움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식(曹植)은 평생을 우울히 지내다가 41세의 젊은 나이에 천재적 재능을 펴보지도 못하고 한을 품고 죽어갔다.

 형제일기연(兄弟一氣連)이란 말은 형과 아우는 한 어머니의 자궁(子宮)에서 같은 기운(氣運)을 받았기 때문에 촌수(寸數)가 있는 부모 자식과는 다르게 한 몸이나 같다는 말이다.
이런 형제가 화목해야 되는 것은 천리(天理)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인간이 갖게 되는 불행의 업보(業報)인 것이다.

 형제간 사이도 하나의 인연인데 잘못만난 형제는 평생의 불행을 동반하고 있다. 재산문제 정신적인 갈등 만나면 다정해야 할 형제가 마치 개와 원숭이 같은 사이의 형제들은 차라리 남보다 훨씬 못하다. 오죽이 형이 동생을 못살게 괴롭혔으면 “콩을 삶는데 콩대로 불을 땐다” 라고 하였겠는가!

세상이 많이 변하여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뿌리를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형제나 친척 혈연(血緣)의 이유만으로 자아(自我)를 침해당하면서 수직적으로 얽매이지 않겠다는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이 요즘 세태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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