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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 복수 혈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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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7-04-07 17:22 댓글 0건 조회 68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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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장으로 태권도장으로 오빠를 따라 다닌 덕분에
난 제법 낙법도 잘하고 주먹도 센 말괄량이로 자라나고 있었다.

오빠를 제치고 골목대장으로 자리매김했던 난
오로지 그 힘 하나가 나의 버팀목이었기 때문이었다.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팔씨름을 하면
오빠를 포함한 난 백전백승을 거둘 정도로 힘이 좋았다.
팔씨름에서 이긴 나에게 주어진 포상은
내 어깨 위에 얹어진 알록달록한 보자기였다.

어깨위에서 나풀거리는 보자기의 또 다른 변신을 위해 머리위에 바가지 하나 올려놓으면
어느새 난 전쟁놀이의 소대장으로 변해있기도 하였다.

지금 어린 아이들의 놀이 문화에선 뒷골목의 밤 풍경은 찾아볼 수가 없지만
우리들의 지난 어린 시절은 지금의 아이들과 같이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없었던 대신
따뜻하고 정겨웠던 골목길의 친구들이 함께 살았었다.

눈이 소복하게 내린 어느 날
우리 남매는 권투를 한답시고 집에 있는 분홍색 잠옷 가운과
청색 가운을 한 벌씩 나누어 입고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때 정말 어디서 그런 옷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말 우리 집에 있긴 있었다.)

다 타버린 연탄재를 부수어 눈 위에 권투 링의 선을 만들어 놓고
의자를 각자 위치에 나열하고서 우리 남매를 앉혀 놓고는
오빠와 나의 가운을 열었다 덮었다하며 심호흡하라는 모습이
제법 그럴싸한 권투장을 방불케 하였다.

한 녀석이 집에서 갖고 나온 세수 대야를 방망이로 쨍 하고 두들기자
동네 꼬마 녀석들은 환호성을 질러 댔다.
녀석들의 응원에 힘입은 우리 남매는
인정사정 볼 것 없는 한판 싸움에 돌입했다.

그러나
많은 준비와 심호흡을 하고 덤벼들었던 권투 시합은 싱겁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1회전 한 방에 선방을 날린 것이 그만 오빠의 코를 정확하게 강타해 버린 것이었다.
오빠의 코에선 벌써 선혈이 흐르고 있었기에 겁이 난 그 길로 내따 도망쳐
엄마의 치마 자락 뒤로 숨어 버렸다.

“엄마! 저 계집애 빨리 내놔요.” 하고 오빠는 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엄마가 누구신가?
엄마 역시 사태 파악을 하셨기에 순순히 나를 오빠에게 넘겨주지 않으셨다.

엄마를 사이에 두고 쫓고 쫓기는 행동을 반복하다
“이제 그만해라.” 하시는 따끔한 말씀에
오빠는 씩씩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 버렸다.

‘휴~ 다행이다.’
오빠의 눈치만 보고 한숨을 쉬고 있는 동안
엄마는 눈물 콧물 코피가 범벅이 된 얼굴을 말끔하게 씻기셨다.

“같이 놀아도 좀 과격한 행동은 하지 말거라.”
엄마는 당부의 말씀과 함께 오빠를 다 씻기신 후
오빠의 마음을 풀어주시려는 듯 맛있는 김치전을 부쳐주셨다.

오빠는 엄마가 해 주신 김치전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김치전에 내 젓가락이 가면 잽싸게 낚아채어 오빠 입에 얼른 넣고는
나를 향해 혀를 널름 내밀었다.
“메~롱” 하며.........

그러나
오빠가 맛있는 것을 먹었으니
사태가 여기서 일단락지리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에 큰 오차가 생겼다.
잠시 후에 엄마가 출타를 하신 것이었다.

오빠는 잽싸게 부엌문을 걸어 잠그더니 빗자루를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이러지마~.” 하고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는데
오빠는 사정없이 나에게 매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응원군이 없는 나에게는 실로 비참한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당나발이 되어 버린 내 입술
외출했다 돌아오신 엄마를 붙들고 난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이 자식아~ 어쩌다 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냐?”
엄마의 호된 야단에도 오빠는 회심의 미소를 나에게 던졌다.

‘두고 봐라.’
당나발이 되어 버린 그 상황에서도 난 복수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분이 풀리지 않은 난 밖으로 나가
눈을 뭉치며 오빠에게 던져 버리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생각대로 오빠는 김치전을 배불리 먹고 계획된 장소로 나타났다.
이때다 싶어 쌓아 둔 눈 덩어리를 오빠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으나
땅콩만한 오빠는 잘도 피해 다녔다.
오히려 오빠가 던진 눈 덩어리는 정확하게 내 귀에 퍽 하고 꽂혔다.

통쾌한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질을 해 대는 오빠에게
난 또 한 덩어리를 던졌다.

앗~싸 보기 좋게 명중되었다.
내가 던진 눈 덩어리가 오빠가 웃고 있는 그 큰 입 속으로 명중되었던 것이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우리 남매가 앙숙처럼 복수 혈전을 거듭해나가면서 자라났던
그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가끔 내 머리 속을 스치기에
기억을 더듬으며 이 자리에 살며시 내려놓아 본다.

지금도 아련한 옛 추억 한 자락을 떠올리며 희미한 웃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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