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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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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른세상 작성일 2007-06-29 11:48 댓글 0건 조회 9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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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빵~”
자동차 경적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하교 길 버스 안에 있던 저는
고개를 쑥 내밀고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저 담배꽁초를 주우려는 일념하나로 차가 다니는 도로도 구분하지 못하시고
바닥만 바라보시면서 하염없이 걷고 계시는 한 분의 할머님이
제 눈에 들어 왔습니다.
자세하게 창 밖으로 고개를 더 내밀며 쳐다보았더니
바로 우리 어머니의 어머님이신 저의 외할머님이셨습니다.

빨리 지나가버리는 통학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한 저는
그저 할머니를 바라보면서도 할머니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 오다가 할머니를 보았어.”
“길에서 담배꽁초 줍고 다니시는데 차에 치실 뻔 하셨어.”
철이 없던 저는 그 아찔했던 현장을 어머니께 모두 말씀 드렸습니다.

오 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아버님이 중풍으로 수족을 못 쓰시기에 그 병 수발을 하시느라
정작 어머니는 치매에 걸리신 친정어머니를 돌봐드리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항상 할머님께 대한 송구스러운 마음에 죄인처럼 지내셔야만 하셨습니다.

“그럼 얼른 내려서 모시고 왔어야지. 그 길이 얼마나 먼 길인데........”
“ㅇㅇ아! 할아버지 좀 보살펴 드려라.”
어머니의 손길이 없으면 꼼짝도 못하시는 시 아버님이 걱정되셨는지
저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시고 급히 제가 말씀드린 방향으로 뛰어 나가셨습니다.

이 십리가 되는 그 먼 길에서도 할머님은 과연 딸자식이 살고 있는 방향을 알고 계셨는지
방향은 저의 집 방향이 분명하였기에
하교 길 제가 할머님의 행동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어머니의 행방조차 묘연해지고
해는 벌써 기울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저 역시 어머니를 기다리는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하였고
‘아! 그 때 내려달라고 소리라도 질러 볼 것을.......’
하는 후회스러움과 죄스러운 마음에 입이 바짝 마르기 시작하였습니다.

pis008.jpg잠시 후
가족이 모두 기다리는 집으로 어머니가 도착하셨습니다.
그러나
옆에 할머님은 계시지 않았고 눈물 젖은 어머니의 모습이
상황을 짐작하게 하였습니다.

“어떻게 해.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아요.”
눈물로 호소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할머님을 찾아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핸드폰 하나 없었던 그 시절
찾으러 나간 사람들끼리 서로의 행방조차 모른 채 다음 날이 밝아왔습니다.
“어디서 돌아가셨는가 봐요.”
밤 새 산으로 찾으러 다니시느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신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거의 포기 상태로 모든 가족이 흐느끼고 있을 때
“누나! 엄마 찾았어.” 하시며 외삼촌께서 저의 집에 들어 오셨습니다.
“어디 어디서?”
다급해진 어머니의 목소리는 무척 떨렸습니다.
“숲을 헤치다보니 엄마가 그곳에 쓰러져 계셨어.”

외삼촌이 모시고 들어 온 외할머님의 얼굴엔 온통 상처뿐이었습니다.
컴컴해진 산꼭대기에서 집을 찾느라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
입고 계신 옷조차 모두 찢겨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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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할머님을 와락 껴안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통곡을 하셨습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어머니는 할머님을 모시지 못하는 죄스러운 마음에 미안하다는 말씀만 되풀이 하셨습니다.
그런 딸자식의 안타까운 모습도 알아보시지 못하시는 외할머님께선
어머니에게 “배가 고파. 밥 좀 줘.” 하셨습니다.

밥상을 차려 오신 어머니는 할머님께
“천천히 드세요. 체하시지 말고......” 하시며 수저를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할머님은 누가 빼앗아 먹을 것처럼 느끼셨는지
입안에 음식도 삼키지 않으신 채 연실 음식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식사를 마치신 할머님께선 이 번엔 담배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담배 한 갑을 꺼내어 한 개비에다 불을 댕겨 드리자
담배를 할머니 손으로 가지고 가셔서는 열 손가락에 끼워 물으셨습니다.

“엄마! 왜 그래요. 정신 좀 차려 봐요.”
애타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 할머님은 자꾸
같은 행동만 되풀이 하셨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어머니는 외할머님을 자주 찾아뵈었습니다.
손에는 할머님이 좋아하시는 고기를 어려운 형편에 사 들고
올케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할머님을 잘 모셔 달라는 부탁의 말씀을 거듭하시며
집으로 돌아오시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시집살이에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던 사정으로
어머니는 얼마간 할머님을 찾아뵙지 못하셨습니다.

꿈자리가 뒤숭숭하시다며
어려운 생활 속에 어렵게 구하신 닭 한 마리를 싸 들고
또 다시 할머님이 계신 친정집에 방문하셨을 때에는
할머님의 방문이 굳게 자물쇠로 잠겨 있었답니다.

치매를 앓고 계시는 시어머님을 모시기 어렵다는 올케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자식으로서 올케에게 서운함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 감정을 애써 마음속으로 삭히셨답니다.
오히려 할머님께 해가 되실 것 같은 예감 때문에.........
방문을 열어 보니 어머님은 또 다시 오열하지 않을 수가 없으셨답니다.

문을 잠그고 아예 굶으신지 오래 되신 듯
뼈만 앙상하게 남으신 채로 방에서 일어서지도 못하시고 계셨답니다.
치매의 전형적인 증상 때문에 올케가 가혹한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아시면서도 용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어렵게 구해서 갈 때마다 갖고 갔던 고기조차 두 모녀가 먹어치우고
할머님은 굶겨왔었다는 사실이 어머니로서는 믿기지 않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잠겨진 방문을 열고 할머님을 뵙는 순간
모든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어머니는 진실을 알게 되셨던 것입니다.
“잘못했어요. 때리지 마세요.”
웅크리신 채 어머니를 향해 빌고 계시는 할머님을 안고 어머니는 하염없이 우셨답니다.

그 길로 어머니는 저에게 할아버지를 보살피라고 당부하시고
할머님을 보살피셨으나 며칠 되지 않아서 헛소리를 하시기 시작하셨답니다.
“저기 할아버지가 나를 오라고 하네.”
헛소리를 자꾸 하시는 할머님께 어머니는
“뭐가 보인다고 그래요. 엄마! 정신 좀 차리세요.”하셨더니
“저기 까만 옷을 입은 할아버지 말이에요.” 하시며 자꾸 구석을 가리키시더랍니다.

밤새 어머니는 천 조각을 누벼 이불을 완성시켜 할머님께 덮어드리려고 바느질하시며
할머님 곁을 지키셨으나 할머님은 끝내 어머니 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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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 못 다한 불효의 마음으로 마지막 옷을 갈아 입혀 드리는 순간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할 현장을 목격하셨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용을 쓰시다 쏟아 놓으신 그 용변 속에
울타리의 죽은 나무 가지를 발견하셨던 것입니다.

‘얼마나 배가 고프셨으면 죽은 나무 가지를 다 드셨을까?’

할머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드릴 때는 너무 늦은 선택이었기에
물 한 모금도 못 넘겨 드린 것이 한으로 남아 계신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어버이 날인 오늘 부모님에 대한 효도의 방법을 다시 한 번 깊은 마음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효심도
너무 늦은 선택이 아니시길 바라는 마음 주제넘게 생각해 보면서........
(미즈 수다카페에 올린 글 다시 올려 보았습니다. 너무 조용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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