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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노병들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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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란 무엇인가?
전우애란 무엇인가?
그대들은 40도가 넘는 열대정글에서 모기와 마라리아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본 적이 있는가?
그대들은 피부가 짓무르고 머리터럭이 빠지고 내장이 썩어가는
고엽제의 천형과 투병해 본 적이 있는가?
이 모든 지옥속에서 아직은 살아남은 참전용사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하나 둘 모여 들었다.
2010년 한해가 마무리 되는 12월7일 오후 6시였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악몽에서 채 깨어나지 않은 갈기갈기 찢기워진 육신을 끌고...
우리의 정신적 지주이신 채명신 사령관님께서는
오늘도 80노구를 이끌고 어김없이 이 자리에 참석하셨다.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옛 부하들의 등을 일일이 쓰다듬으며
오히려 우리들의 건강을 염려하셨다.
노 장군과 그나마 조금은 더 젊은 부하들과의 굳게 마주 잡은 손
그것이 전우였고
그것이 전우애였다.
태극기의 성스러움을 그대들은 느껴본적이 있는가?
평화의 하얀 바탕에 우주창조의 양의(兩儀)인 청홍의 태극무늬가 선연히 자리하고
천,지,일,월을 상징하는 건,곤,감,리, 4괘가 철옹으로 둘러싼 태극기를 보면서
울대를 타고 치솟는 핏덩이를 입술을 깨물며 삼켜 본 적이 있는가?
7일간의 대 항해끝에 낯설은 월남땅에 내려졌을때
제일 먼저 만났던 태극기를 바라보며 너와 나는 같이 울었고
그리고 우리는 같이 살아 돌아왔다.
수많은 전우들의 넋을 이국땅 낯선 하늘에 남겨둔채....
2010년 10월3일
윤창호 전우는 병든 육신을 이끌고 파월훈련장이 있던 오음리를 홀로 출발하여
장장 45일간 1,280km 를 걸어 부산을 돌아 11월15일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것은 글짜 그대로 죽음의 길 사천리(死千里) 고행이였다.
무엇을 위한 노병의 투쟁이였던가.
국가를 위하여 젊은 피를 흘린 참전군인에게 돌아온 것은 '용병(傭兵)' 이라는
폄하와 '양민학살' 이라는 덤테기 뿐.
우리가 대한민국 국군이 아니고 미국에 돈으로 고용된 병사이며
우리가 무고한 양민이나 학살한 히틀러의 나치같은 악랄한 존재란 말인가?
두 뺨을 타고 흘러 내리는것은 분명 분노의 눈물이였다.
작은 기념패지만 윤창호 전우의 숭고한 투쟁을 위로하기 위해
모두의 마음을 모았다.
사령관님께서도 따뜻한 포옹으로
그의 노고와 마음을 달래주셨다.
곧 이어
베트남참전 유공전우회 회장이신 이중형 소장님의 격려사에 이어
노 사령관님의 카랑카랑한 훈시가 시작되었다.
"천안함사건과 연평도 기습이 벌어진 것은 적의 도발을 불러 일으키게 한 분명한
요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내부에 만연되고 있는 '분열의 바이러스'이다"
해병소장 오윤진 장군은 8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적과 우리국민에게 토해내는
사자후는 간담이 서늘하도록 날카로웠다.
"도대체 이 나라는 정신이 있는 건가?
바로 지척에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적을 두고 겨우 자주포 6대로 수천문의 방사포를
상대하려 했다니...
아무리 귀신잡는 해병이라도 무기도 없이 어떻게 귀신을 잡으라는 건가?"
두코전투의 영웅 한광덕 장군님의 건배를 시작으로
즐거운 만찬이 시작되었다.
남편을 국가에 바친 이순구, 이명자 두분 미망인을 자리로 불러서
사령관님께서는 그 손을 꼭 잡아 주셨다.
아마도 그들은
비록 남편은 그렇게 떠났으나 오늘의 일을 평생 잊지않고 살아갈 것이다.
남편을 영원히 기억할 전우들을 만났으니까....
십자성 부대.주월사
맹호부대
청룡부대
백마부대
80노구의 노 사령관 채명신 초대 주월사령관을 중심으로 청룡부대의 일선 대대장으로
그리고 작전참모로 용맹을 떨친 오윤진 장군, 이중형 베트남 참전 유공전우회 회장,
두코전투의 살아있는 영웅 한광덕 장군, 무적해병의신화를 남긴 짜빈동 전투의 또
한사람의 영웅 김세창 대위, 주월사 정재성 중위, 해청기의 캡틴 등 역전의 노병들
백여 명이 자리를 함께 한 송년모임은 이렇게 끝났다.
2011년 송년회 모임에도 오늘 오신 전우들 중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유평화를 위해 싸운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군인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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