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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 하얀 카네이션 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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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6-05-09 13:59 댓글 0건 조회 66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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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이 되면
부모님들 왼쪽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은 모습들을 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
부모님 가슴에 달아 드리고 싶어도 달아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의 카네이션 한 송이가 제 곁에 남아 있습니다.

자식을 그렇게 원하고 바랬지만
마음대로 출산을 못해 고통 받고 계셨던
어느 한 분이(가족 관계를 지키려는 저의 마음) 제 곁에 계십니다.

그 분의 형님 내외가 따님 한명을 출산하고 난후
이번에 아이를 낳게 되면 아들이던 딸이던 관계없이
동생에게 입양시켜 줄 것을 약속하셨었습니다.

따님을 출산 후에
또 다시 귀한 아들을 출산하셨음에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생 내외에게
자신의 자식을 동생 품에 안겨주며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핏덩이의 어린 자식을 어떻게 자신의 품안에서 떼어 낼 수 있었을까?’
저만의 안타까운 생각 이였습니다만,
다른 집안을 돌아보니 그런 이웃들도 더러는 있더라고요.

아무도 모르게 뚝 떨어져서
마치 내가 낳은 아들인양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고 키워 내신 두 분의 모습은
제가 옆에서 쭉 지켜봤기에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녀석이 간혹 제 등을 빌릴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쉬 쉬’ 한다고
모든 일들이 묻어 질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자식에게 입혀 놓은 아픈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겠습니까?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기 자신을 낳아 준 생모가 누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낳아 주신 어머니마저
냉정하게 고개를 돌리면서 까지 철저히 외면하고 사셨기에
“엄마” 하고 마음 놓고 한번도 부를 수 없는 이름이었습니다.

서로가 부모 자식임에는 틀림없는데
형제간의 ‘약속’이라는 그 이름만으로
서로의 이름이 입가에 맴돌면서도 부르지 못하고 살았던
두 모자의 심정을 다시 한번 헤아려 봅니다.

어버이날인 어제 저녁
녀석은 하얀 카네이션 한 송이를 들고 저를 찾아 왔습니다.
끝내 어머님께 전해 드리지 못했노라고 하며...

“이제는 불러도 대답 없는 고인이 되었는데 왜 불러 보지 못했니?”
저의 말에 녀석은 고개를 숙이며 말없이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살면서 모든 이들이 수많은 사연들을 가슴에 묻고 산다지만,
‘제 곁에는 어찌 이렇듯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을까?’ 라는 생각과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아 내기엔 너무도 가슴이 뻐근하도록 아파왔습니다.

녀석의 등을 토닥이며
“이제 그만해라. 이제 그~만...” 했지만
손에 쥐어 있는 하얀 카네이션 한 송이가 녀석의 눈물에 젖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새벽 기도를 다녀오시다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급한 부름을 받고 중환자실로 달려간 녀석은
심한 장기 손상으로 형체도 알아 볼 수 없는 생모의 마지막 모습에
고개를 돌리며 혼잣말로
“엄~마!”라고 불러 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어머님은 누구를 위해 새벽 기도를 다녀오셨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냉정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으셨던 생모의 행동이
아직도 이해할 수 없음에도
녀석의 가슴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어머니”라는 그 이름을 주체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시대의 흐름이 아무리 바뀐다 해도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천륜(天倫) 인 것을...

가족간의 대를 잇기 위하여 결정 내렸던
두 형제간의 무모한 행동이
녀석에게는 아직도 이해 할 수 없는 아픔으로만 남아 있기에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이름인가 봅니다.

지금 제 곁에는
녀석이 두고 간 눈물에 젖은 하얀 카네이션 한 송이가
덩그마니 남아 있습니다.

이제
내년 어버이날엔
녀석의 아픈 상처가 하루 빨리 치유되어
밝은 표정으로 저에게 다녀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두 모자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하얀 카네이션을 제 곁에서 치워 버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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