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마당

기별게시판

47기 나의 불교 입문기 (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야부리 작성일 2007-12-08 02:36 댓글 0건 조회 835회

본문

쉬는 날도 없이 점빵일에 매달려 지내야하는 한가로운 여름날,

한번은 집사람을 골려주고 싶었습니다. 모든 남자들의 꿈이

전업주부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꿈은 멀기만하고.

집사람이 핸드폰을 새로 샀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집에 전화기 있는데 뭐가 핸드폰이 필요한지,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평소 어리숙하게만 느껴지던

집사람을 한 번 골탕 먹여야지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때까지 저도 핸드폰 가지고 다닌지 오래 되었지만

문자 메세지를 보낼 줄 몰랐습니다, 그저 오는 전화 받고,

필요할 때 전화하고, 사실 핸드폰에서 글을 적는 천지인의

원리를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인터넷으로 문자 보내는

것은 신세대 점빵직원한테 배워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제작년쯤인가 카드사에서

경쟁적으로 카드를 발급하고 사용을 권장할 때 카드

많이 쓰라고 카드 끍으면 복권처럼 5천원 만원 당첨되는게

있었습니다, 저도 만원짜리 한번 당첨되어 어느 날인가

통장에 공돈이 들어 온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걸 생각하고 인터넷으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인터넷에 축하메세지 예문에 별표, 하트무늬랑 화려한

기호를 카피해서 문구를 넣고는 -축 당첨, 카드복권

1등 7천만원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 이렇게 문자를

보내곤, 이것만 보내면 스팸문자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연달아 한 개 더 보냈습니다. - 축당첨 현0미님

카드복권 1등 7천만원 세금 공제후 48,893,280원

고객통장 농협 747-23-******로 입금, 확인요망 -

딱 요렇게만 보냈습니다, 실명까지 거론하며,

통장번호에 *까지 넣고 발신자 번호를 080-200-1004번으로

넣고 그럴듯하다고 뿌듯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그 때

집을 사려고 중도금으로 마련해 놓은 돈을 집사람 통장에

입금을 시켜놓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 놈의 마누라가 한 오 분이 지나도 전화가 안오는 겁니다.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에도 술먹고 새벽에 들어가

간도 커게 자고 있는 마누라랑 애들한테 돌아가며 뽀뽀를 쪽쪽하고는

사랑한다고 일장 연설을 했더니, 하루이틀도 아니고! 내가 위자료만

있어봐라 당장 애들 데리고 간다고 큰소리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도 그건 아니지라고 위안하며 다시 생각해봅니다. 혹시 공돈이

생겼다고 혼자 꿀꺽하는 것 아닌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남편이라고 생각하는지 의심이 팍팍 갑니다. 이런저런 의처증

증세가 왔다갔다하는 사이에 따르릉 전화가 왔습니다, 개똥엄마였지요!

자기야 내 복권됐다! 거 뭐꼬 카드... 카드복권 있잖아...

카드 많이 쓰면 당첨되는거... 말까지 더덤더덤하며 흥분해하데요!

그래서 설쩍 장단을 맞춰줬지요, 무신 소리하노? 니 언제 복권샀노?

씰데없는거 사지마라 그랬제, 아, 아니, 카드복권말야! 뭐라카노,

니 카드 자꾸 긇고 댕기지 마라켔제, 전형적인 경사도 사투리로

쏘아붙이는 척 했습니다.

이러쿵저러쿵!,

진짜가? 니 요즘 스팸메일 많이 들오는데 어디서 돈 갖다쓰라는

말을 잘 못 본거 아이가?

진짜로 돈이 통장에 들어왔답니다, 인터넷으로 통장을 확인까지

해봤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1등이 얼매라꼬? 칠천만원이라꼬? 얼마들어왔다꼬?

이렇게 꼼꼼히 확인하는 척 하고는 세금 너무 많이 띤다고,

계산기까지 두드리는 척하면서 도둑놈들이라고 막 욕을 했습니다.

그리곤 집사람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절대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라고. 공돈 생겼다면 다 뜯어가려고 주위에서 난리친다고,

남편이 아니라 인생선배로서 조언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니 집사람이 얼마나 환장하겠습니까? 당첨도 당첨이지만

입이 근질거려서 말입니다.

저녁에 퇴근해서 보니 우황청심원 빈병이 식탁위에 놓여져

있습디다, 속으로 낄낄낄 웃었지요.

물어보니 장모님하고 동생들한테만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적당히 나무랐습니다. 그래놓곤 아부를 떨었지요,

나한테도 콩고물을 쫌 달라고 슬슬 작업하는 척하며

어깨도 주물러주고 안마도 해주고...

확실하게 앞으론 설거지는 내 담당이라꼬 큰소리를 쳐놓곤,

싱크대에 빈 그릇 몇 개 없데요, 저녁을 안 먹었는데 배가

안 고푸다는 겁니다, 빈그릇 몇 개 헹구는 척 모션도 함 취해주고...


그런데 이쯤해서 끝내야 되는데 벌써 일이 커져서

차마 입이 안 떨어지는겁니다.

-- 이사가면 쇼파도 사고, 식탁도 바꾸고

벽지도 이백만원짜리 친환경벽지로하고,

동생한테 마티즈도 한 대 사주고,

장모님한테는 현찰이 최고라는 둥...


--- 애라이!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진데

내가 어떻게 집사람을 이렇게 행복하고 황홀하게 해 줄 수 있겠나,

며칠만 더 행복하게 해주자고 암말도 안했지요,

집사람이 잠을 잤겠습니까! 다음날 새벽에 잠이 들었는지,

행복한 표정에 신랑이 출근하는지도 모리고 계속 꿈속을 헤메는거 같더구만요


그런데 제가 생각 못한 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그 후유증을 생각 못 한 겁니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했는데 처제한테서 전화가 왔데요,

형부 마티즈 고맙다꼬,

언니가 복이 많아 형부같은(?) 남자도 만나고, 복권도 당첨되고

마음씨도 좋지 마티즈까지하며 어쩌구 저쩌구...

그래서 처제한테 농담이라켔더니,

어쭈! 또 안믿는 겁니다, 마티즈 얼매한다꼬, 중고라도 괜찮다고 양보도하데요...


집사람한테 당장 전화했지요! 안 믿데요. 황당쓰.

제가 통장에 입금했다고, 장난친거라고 아무리 이야길해도,

자기돈 빼뜰어 갈려고 칸다며 되레 신경질입니다.


이것 수습한다꼬 제가 맞아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집사람 화 풀릴때까지, 이불 덮어놓고 두들겨패면

소리도 안나고 멍자국도 안 남는다는걸 처음 깨달았습니다.

다음엔 절대 이런 장난치지 말아야지하고 맹세했습니다.



집사람 그때 충격과 후유증이 한 3달 갔습니다,

애가 울든 말든 쳐내삐래 놓고, 사는 낙이 없다는 둥,

저녁에는 요즘 맥주가 와이래 물이냐는 둥,

남편이 퇴근해도 저기 출근을 하는지 퇴근을 하는지 개 닭쳐다보듯 하질 않나,

요즘 드라마는 또 와이래 눈물이 마이 나오냐는 둥,

어쩌다 뽀뽀라도 함 해볼라카머

쳐박히 자라켔데이... 이 한마디면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금욕생활이 오늘 이렇게 불교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천만원의 한순간행복이 행복입니까? 석달 동안의 불행이 불행입니까?


오늘 이시간 불법을 알게되어 너무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_()()()_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