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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 첫 주례(主禮)를 맡았던 그날을 회상(回想) 하면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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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영기 작성일 2011-06-29 18:52 댓글 0건 조회 58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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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Eeden 東山) 의 첫번째 주례자는 조물주 하나님이시다 창조주가 친히 흙으로 만든 아담(사람)이 홀로 독처 하는 것이 좋치않아 돕는배필 하와(이브) 를 만들어 하나님께서 친히 혼례식을 관장하시며 주례를 보셧다
인간은 일차적으로 의식주(衣食住)가 필요하지만 심리학자 매슬로(Maslow)에의하면 1차 생리적 2차 안전 3차 소속과애정 4차 자존감 5차 자아실현 욕구인데 이 욕구들이 결핍되면 병이 오고 이욕구가 회복되면 병이 예방되고 치료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원하는 욕구가 채워지면 또 차상위 욕구를 갈망하게끔 만들어 졌다 Eeden 東山에 인간이 범죄 하기전 모든 욕구가 충만 (充滿)하여 심히 좋았다 그런데 한가지 미해결 된것이 있엇으니 고독(孤獨)이란 문제였다 이것을 해결하기위해 여자를 만드 셨다 그리고 아담의 평생 반례며 동반자로 일생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살아 가도록 부부로 짝지어 주셨다
내가 구세군 사관학교(The slavation Army Training College) 졸업하고 구세군 대장의 이름으로 임관 임명을 받아 처음 발령 통지를 받고 부임한 곳이 충남 논산읍 이였다 거기서 3년의 인턴과정을 끝맺고 두번째 부임지가 경북영덕군 지품면( 面 ) 소재지였는데  갓 30대 이립(而立) 나이에 부임한 교회는 30년이 넘는 연륜을 가진 교회였지만 교인은 겨우 30-40여명 이 모여 근근히 꾸려가는 시골 농촌교회였다 
면소재지에서 혼례식이 있으면 면장님이 아니면 의례 동내교회 담임목사 가 주례(主禮)를 맡아 보는 것이 통상 이 마을의 관례며  내려오는 전통이다
우리교우 조카가 우체국 집배원으로  체신공무원이며 노총각이다 처녀는 읍내 교회 출석 잘 하는 믿음좋은 처녀다 결혼 은 우리교회로서 는 큰 경사로 믿음 좋은 처녀를 신부로 맞이하면 교인이 2명 증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소를 읍내 영덕 예식장에서 시골 장날 오전 11시에  올리는데  양가 친척들이모여 신랑측에서는 기독교 식으로 신부측에서는 세상식으로 해야 된다고  쌍방  실랑이를 하다가 신랑측인 우리쪽이 유리하여 기독교식으로 하기로 했다  주례는 목사님이  맡아 달라는 것이다 내가 피할수도 없었 지만 내심 첫번 처녀주례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하루전날 신랑집에서 주례하는 날 착복하고 나오라고 흰 와이셔츠 한벌과 잔치에 준비한 첫 수지 음식을  가지고 와서 "내일 목사님 주례 잘부탁 합니다 "(경상도 버젼으로 내일 욕좀 보겠니더 )하는 것이다 그당시 그시절 주례자에대한 사례(謝禮)인 셈이다 그때 부터 심장이 떨리고 가슴이 멍멍해왔다 이일을 어쩌나 불신자측 내빈과 신자측 내빈 모두를 만족케 해 주어 웬만한 혼례식을 이끌어 가야 하는 부담 감 때문이 였다 그러나 이왕 벌려진 판이라 담대하게 요한복음 3장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로 간단  명료하게 진행햇고 그날 우리교회 성가대가 동원되어 "사랑의 종소리 " 라는 축가로 청중을 사로 잡아주었다 그후에 교회가 부흥되고 120명 넘는교회로 성장하여 새교회당 을 건축하고 나는 경기도 평택시로 영전이 되었다(88년도) 지금 그부부는 60세가 훨신 넘은 중년 후반 부부로 아들 딸 낳고 잘살고 있다 그후에 안 일이지만 그당시 주례자엿던 나보다 그노총각은 나이가 몇살 더 많은 인생 선배였다 세상에 어찌 이런일이 ! 지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러나 나는 그당시 당연하고 당당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서울에서 목회를 하면서 30여년 간격의 세월을 회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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