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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기 13. 먹다가 망한다고 하는 오사카! 오감이 즐거운 도톤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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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GO 작성일 2017-06-16 20:06 댓글 2건 조회 99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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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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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쇼군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주했던 오사카성

이곳에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자취가 남아
있다
일본의 3대 성인 오사카성은 오사카의 역사와 문화, 관광의 상징이며
시민들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성으로
많은 인력이 동원돼 완공시킨 오사카성에서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할수 없을
정도의 초대형 바윗덩어리등으로 켜켜히 쌓아 올려 축성한 성벽을 볼 수 있다.

이곳은 1931년에 재건돼 1997년 봄 새롭게 재정비를 통해 더욱 인기를
모으고 있다. 계절을 대표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로 둘러싸인
공원과 함께 전 세계에서 여행하는 여행객들은 물론 많은 오사카 시민들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중> 사슴공원 
약 1100마리의 사슴들이 있는 공원으로 1880년에 세워졌다.

또한 공원 주변에는 많은 역사적 유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주변 전철역과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으며 눈 앞에서 사슴들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하> 도톤보리의 움직이는 초대형 대게간판

 

오사카 남쪽의 번화가인 도톤보리는 도심 남쪽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폭 30∼50m, 길이 약 2.7㎞의 하천 도톤보리 강(道頓堀川)을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관광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대형 간판과 캐릭터
조형물이 많기로 유명한데 마치 홍콩분위기와 비슷하다.

 

맛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통용되는 곳,
도톤보리(道頓堀)에서 대게코스요리 전문점으로 소문난 “가니도라쿠”에서는
다양한 대게요리를 즐길 수 있다.

대게를 넣은 계란찜인 차완무시, 수족관에 살아 있는 대게를 데쳐
초무침한 가니시, 대게튀김, 대게그라탕, 대게 샤부샤부, 대게다리 구이….
식사는 맑은 장국과 두툼한 대게 살을 발라 넣은 스시로 마무리한다.

 


13. 먹다가 망한다고 하는 오사카!  오감이 즐거운 도톤보리.

 

2007년 친구 심갑찬님 부부등과 함께 북쪽 센다이 에서 출발하여 이곳
오사카를 중심으로 도쿄~하코네~교토~나라~고베~시코쿠 등지의 거리를
함께 걸어본지 10년!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갔다!

오사카는 예부터 상인과 음식이 유명한곳, 인구 1천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오사카여행에서 일본의 전통문화를 보고싶으면 교토로,

세련된 근대문화를 보고싶으면 코베로 라는 말이 있다.

 

도쿄역 에서 신칸센 희카리(빛)호에 탑승 552,6km를 내 달려

도카이도 신칸센의 종착역인 신오사카역(新大阪駅)에 도착했다.

신오사카는 신칸센의 대표역으로, 도카이도 신칸센, 산요신칸센의
기·종점으로, 모든 열차가 정차하고 있으며, 신칸센 노조미(희망)가
도쿄~신오사카~하카다로 직통운행 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오사카는 항만, 철도, 공항 등 거의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해 외부에서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교통 요충지다.

 

 

◆놀라운 복합환승 공간 신오사카역(新大阪駅)

 

신오사카역은 열차 선로위에 건립한 구조물로서 신간센을 중심으로
특급, 급행, 전철, 버스, 택시까지 한곳에서 일관 처리되는 거대한 복합
환승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신칸센을 중심으로 한치의 착오도 없이 왕복열차 교행이 안전하게 처리되고,
환승이 이루어 지는 일본 철도의 놀라운 시스템에 압도 된다.

 

도쿄가 서울이라면 오사카는 부산인 셈이다.

부산 사람들이 서울과는 다른 자신들의 프라이드와 전통(관습)을

지켜나가듯이, 오사카 사람들도 자기 지역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향토의식을 갖고 있다.

 

 

◆오사카의 상징, 오사카성

 

오사카성은 나에게 히데요시라고 하는 “코자루(小猿;원숭이새끼) 같은 넘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아픈 근대사 임진왜란의 참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오사카 성의 축성공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6∼1598)에게 충성을 
맹세한 30여명의 전국 다이묘(大名:에도시대 봉건영주)들 도움으로 2년 만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히데요시는 젊은 시절 바늘장사를 하며 각 지역을 돌며 정보를 수집했고, 
이름도 몇 번이나 바꾸었다고 한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를 섬기다가 노부나가가 혼노사의 변(本能寺の変)으로 인해
자기부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배반으로
49세를 일기로 죽자 멀리서
그 소식을 듣고 밤새 원숭이같이 기습적으로 달려와 혼란을 수습한후 정권을 잡는다.

 

말단병사 출신으로 추운겨울에 오다 노부나가의 신발을 품에 안아 출세길을
달리기 시작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최고의 권력자로 뗘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후,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각 지역의 다이묘(大名 ; 영주)
들을 굴복시켜 일본 국내통일을 달성하게 된다.

 

오다(織田信長)가 말라빠진 논에 물대 가며 모심고, 추수해 놓자,

히데요시(豐臣秀吉)가 방아를 찧어 일본이라는 쌀가마에 넣어 놓으니,
이에야스(德川家康)가 힘 안 들이고 천하라는 쌀을 거져먹었다.

 

다시 말해서, 통일의 기반을 오다 노부나가가마련 하였다면,
통일은 히데요시가하고, 마지막에 날(生)로 집어 먹은것은 이에야스가 된다.

 

일본 중세~근세를 이끈 세 영웅의 특징과 천하를 쥐는 과정은
울지 않는 새를 울리는 방법론의 차이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역사 서술에서는 무로마치 시대를 끝내고 통일 일본의 위업을 달성한
히데요시가 그후 할 일이 없어진 사무라이 세력과 다이묘(大名)등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결국은 복잡한
국내사정과 그의 과대망상이 조선침략이라는 전란을 일으키게 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참고로]

혼노사의 변 이후 "적은 내부에 있다." 는 속담과 함께,  오다노부나가가 즐겨
불렀다고 하는 ‘아츠모리(敦盛)’도 현대 일본에서 애창되고 있어 요점만 소개한다.

 

“인간의 오십 년 돌고도는 인간 세상에 비한다면 덧 없는 꿈과같구나,
한번 태어나 멸하지 않는이 그 누구인가?“ ~이하 중략~

 

오다 노부나가가 애창하였던 ‘아츠모리(敦盛)’는
人間五十年과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의 기묘한 연관성으로 인해
현대에 와서도 TV등 대중매체 에서 더욱 많이 회자되고 있다.

 

◆조선사회의 가장 큰 사회적 변혁을 가져오게 한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라는 한 인물의 허황된 야망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그는 일본에게는 전국시대를 통일한 영웅일 수도 있겠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조선사회를 송두리째 전란의 비극속에 빠뜨린 주범이다.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 시대의 무장으로 본래 전국통일을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였다.
그는 기지와 용병에 뛰어나 각 지방을 정벌하여 세력 확장에 공을
세워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았다.

 

그는 대륙 진출에 대한 야망을 꿈꾸며 1592년과 1597년에 조선을 침략,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킴으로써 한·일 관계사에 큰

상처를 남기고 후시미성(伏見城)에서 숨을 거두었다.

짧은 그의 묘비명은 인간의 허무를 노래하는

한편의 시 같기에 소개한다.

이슬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인가보다!살아온 한 세상이 봄날의
꿈만 같구나!

 

말(言)머리를 잠깐 돌려서~~

 

작금의 남북관계를 바라 볼 때 드라마 에서도 언급된바 있지만,

유성룡선생이 쓴〈징비록(懲毖錄)〉을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다.

징비란〈시경에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해서 후에 환란이 

없도록 조심한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1590년 통신사로 도요토미히데요시를 만난 서인 황윤길은 “그의

두눈에서 빛이나는 것으로 보아 담력있고 꾀도 있어 보인다”고

선조에게 보고했다.

반면에 동인 김성일은 “그 눈이 쥐새끼와 같으니 조금도

겁낼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한반도 남북 대치 상황에서 북쪽의 핵 개발에 의한 일촉즉발의 안보 위기
상황에서 툭하면 남쪽 불바다 운운~~, 현실화 되지 않을거라는 만연되어
있는 안전 불감증으로 또 다시 화를 자초하지 않을거라는 생각등등

 

학자들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960회에 걸친 크고 작은 외침을 받아 왔다고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안보가 제일 중요하지 않는가?

사드배치 문제만 하더라도 무슨 이유와 조건, 논쟁거리가 그렇게나 많은지?

 

임진왜란 직전 조정에서는 당파적 이해 관계로 일본이 침략할것이라는 의견과
침략하지 않는다는 주제를 가지고, 밤낮 우왕 좌왕 하면서 대책을 세우지않고
있다가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받은뒤 손 한번 써 보지못하고 왕이라고 하는 사람은
국민들은 팽개쳐 버린채 자기 일신 하나 살아 남겠다고 멀리 피난가버리고~,

국민들은 7년이라는 세월동안 당시 인구의 3분의 1이 희생 당하면서, 지옥같은
아비규환으로 연명해온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작금의 학생들은 역사공부를 하지 않아서???>

과거를 잊어 버린 민족은 희망도 미래도 없다고 한다

 

안보를 잃으면 경제, 사회, 정치도 모두 소멸하고 만다는 사실을

직시 해야한다. .

 

지금, 세계 속의 한국은 과연 어떻게 살아 나갈 것인가? 

어느 모로 보나 방심은 금물이데, 국가안보를 생각해 볼 때 참으로 
한심하고 참담한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오랜 세월 물자가 모이고 상업이 번성한 항구도시, 오사카

 

오사카가 지금처럼 상업도시로 활발하게 꽃 피우게 된 데에는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1537~1598)의 역할이 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당시 천황이 있는 교토로 집중되어 있던 경제력을
오사카로 가지고 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상인들의 힘을 빌리기로 하고, 전국의 유명하다는 상인들을 모두
오사카로 불러들여 도요토미가 마련해준 성 아래 지역으로 집단이주시켰다.

 

그곳은 ‘센바’라고 하는 ‘선착장’부근이었다.

운하를 물류에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 덕분에

상인들은 그곳에서 전국의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일본 주요 도시의 특징에 대해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중에 

 

교토는 입다 망하고(기다오레)
고베는 신다 망하고(
하키다오게)
나고야는 저축하다가 망하고, 오사카는 먹다 망한다는 
구이다오레(食い倒れ)라는 말이 있다. 

명성에 걸맞게 오사카에서는 유명 음식점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어느 나라나 입고 먹고 마시는 게 중요한 화두가 되는 모양이다.

오사카는 '천하의 부엌'이라는 별칭답게 다양한 산지에서의 온갖
먹을거리가 많고 먹는 데에 신경을 많이 쓰며 음식문화가 폭넓게
발달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오사카에서 가장 잘 먹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도톤보리(道頓堀)는'구이다오레(食い倒れ;먹다가 망한다)거리'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맛집'이 가득한 곳이다.

 

식도락가가 아니더라도 이국적인 음식을 즐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해외에서 맛보는 특색 있는 그 지역음식은 여행의
추억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톤보리 신사이바시에서 느낀것은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것중
하나가 여행이 아닐까 생각된다. 왕성한 삶의 젊은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는 이곳,
신사이바시 구이다오레길을 일행들과 함께 걷고, 보고, 이야기하고, 듣고, 먹는 즐거움이야 말로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총체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 생각되기 때문이다.

 

도톤보리에서는 관광객들에게 주목을 끌수있는 각종 초대형 간판과 대형 캐릭터
조형물 등을 옥외 광고로 설치 할수 있도록 당국에서 허가를 해 주고, 골목의
오래된 건물하나에도 스토리를 입혀 홍보 하고 있으니 일류 관광도시로 명성을
떨칠수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된다.

 

지역의 특산물과 스토리를 엮은 스토리텔링 전략에 대한 깊은 고민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지극히 소소하고 평범한 소재에서 새로움과 변화를 읽어내어 그것을
상품화하고 이슈화시키는 능력 말이다.

오사카에서의 일정은 그리 빡빡하지 않았지만 오사카성과 도톤보리 신사이바시등
명소를 날이 어두워지도록 걸으며 지친 다리를 달래느라 구이다오레앞 골목을
빠져나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바라본 휘황찬란한 번화가의 야경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으로 다가왔다.

 

다음날, 오사카에서 오카야마로 가기위해 신칸센에 올랐다.

역 선로위에 앉아 대기하고 있던 신칸센이 스르르 바람과함께 미끄러져
나가자 창밖에서 내게로 달려오는 풍경들 또 하나의 추억을 싣고 달려 간다.

객차는 소파같이 안락하고 넉넉한 좌석, 쾌적하고 세련된 실내 환경에 감탄 할 수밖에 없다. 세면실, 각종편의 시설등 작은것에서부터 세세한 배려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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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김시장~
이제보니 당신 모델이구먼!
가칭 "rgo기획여행사(해외편)"의 전속모델..
편하고 넉넉하게 활짝 웃는 모습이 매우 훌륭합니다.
모델료 받아 한 턱 쓰시길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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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양님의 댓글

세양 작성일

오오사카(大阪) 랩소디 라는 일본노래에
 . . . 에이마 오미마 쇼카 소레토 모코노 마마 도똔보리마테 아루키마 쇼카 . . .
라는 가사가 있지. "영화를 볼가요? 아니면 이대로 도똔보리까지 걸을가요?

마지막 줄이 "요이야 미노 오오사카와 후타리즈레 고이노마찌" . . . 어스름의
오오사카는 두 동반자의 사랑의 거리" 라 했으니 남자끼리 도똔보리 거리가
또 다른 재미가 있었겠네요. 멋진 기행문 冊 한 권이 출판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