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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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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c 작성일 2011-01-12 12:35 댓글 0건 조회 6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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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아내가 어디에선가 토마토씨 한 봉지를 얻어 가지고 왔습니다.

작은 투명 비닐봉지에 든 토마토씨는 그야말로 눈에 보일 듯 말듯 코앞에 두면 콧김에도 날아갈 것처럼 작고 가볍기만 했지요.

눈을씻고 세어보니 겨우 일곱 알,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베란다 구석에 방치된 채 놓여져 있던 오래된 화분에 싹을 틔우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마지못해 꽃삽으로 대충 던져버리듯 씨를 뿌렸습니다.

한 달 여나 관심없이 지나고 난 어느 날 베란다 화분들에 물을 주다가 문득 토마토 씨를 뿌린 생각이 나기에 행여나 하고 구석진 곳에 놓여있던 화분에 눈길을 주는 순간 아주 여린 연두색 모종 세포기가 반 뼘 만큼 자라나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 요놈들 봐라!" 어린 놈들이 기특하기도 하거니와 어떻게 든 살려는 봐야 겠다 싶어서 물을 주고 정성을 조금 보였지요. 그러면서도 나는 토마토가 제 모양새를 하고 열매를 맺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한 동안 몹시도 바쁜 일정 때문에 베란다 물주는 일은 아내에게 맡기고 그 토마토 마져 까마득히 잊고 잊었지요.

늦여름 어느 날, 아내는 갑자기 꺅!!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빨갛게 익은 꼬마 토마토 몇 알을 따가지고 거실로 뛰어들어왔습니다. 글쎄, 그 앙증맞은 녀석이 돌보는 이 없는 베란다 한 구석에서 언제 자라 몰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는가 빨갛게 첫 수확을 기쁨을 전해준 것입니다.

크게 농사를 하는 친구들이 들으면 '허~참~기가 막혀' 하고 웃을 일이지만 도심생활에 찌든 한 가정사로는 일상을 벗어난 사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토마토가 얼마나 생존본능이 강한지 빨래걸이를 따라 넝쿨을 만들고 여름내내 우렁 우렁 튼실한 열매들을 맺어 심심치 않게 청정 간식거리를 제공해 주더니 영하 20여도를 오르내리는 요즈음 날씨에도 지금껏 누렁잎을 달고 생명력을 유지하며 열매를 맺고 익어가고 있습니다.

토마토 씨앗과의 첫 상면에서 까치렇게 대했던 나는 다 자란 토마토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있어 양심상 직접 따먹은 적이 없습니다.

아내가 따주면 마지못한 척 먹는 외에는 그저 짐짓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꽃피고 열매 맺어 익어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는데, 아무튼 이 토마토가 주저리 주저리 열린 넝쿨이 전해주는 위안과 행복감은 말이나 글로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토마토가 입냄새를 없애 주는데 특효라나요?
아침 출근길 문 앞에서 아내가 토마토 한 알을 따서 입에 넣어 줍니다. (으~~~닭.살?)

살짝 씹으면 입안에서 톡 터지는 맛과 향기가 난생 처음한 첫 키쓰의 그 아릿함처럼 온 몸을 전율시킵니다.

유념해야 할 점은 이 장면에서 아내들은 남편의 눈을 똑 바로 쳐다봐야 합니다. 남편이 자신의 면전에서 어떤ㅇ을 생각하며 음미를 하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남성들이여 염려일랑 말고 과감하게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이 출근한 다음 혼자 몰래 토마토를 따 먹으며 입 속에 그 향기가 가실 때 까지 자신의 그 달콤한 첫 키스의 기억을 음미할 것이니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올 봄에는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 꼬마토마토씨를 한번 뿌려 보시던가요.
잘 자라 열매 맺거든 착불도 괜찮으니 택배로 좀 보내 주셔도 됩니다. 

토마토가 자라면 사람의 생각도 행복도 함께 자랍니다.   
물론 흑백사진같은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도....

(동짓달 기나긴밤 첫사랑 얘기가 길어져 치고 받고 싸움질 하기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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