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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어느 검사의 사자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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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돈길 작성일 2016-09-19 00:10 댓글 0건 조회 7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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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검사의 사자성어

2016.9.18

한가위에 온 가족들이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집안 대소사 이야기로 시작해 끝날 무렵 일반사회 얘기를 하던 중 어느 검사에 대한 사자성어가 나왔다. 그 검사의 사자성어를 듣고는 필자는 이건 아닌데!

옛날 이야기에서 전해오는 사자성어는 한국과 중국의 대표적으로 축약된 글이며 세계 모든 사람들은 개인의 인생관, 국가관 등 지표로 삼아 죽을 때까지 실천도 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 간다.

사기열전에도 영웅호걸들의 사자성어는 4백개(조자룡 등 등장인물 4,000명, 진시황제 등 주요인물이 200명)가 나온다. 필자도 최근 좋아하는 사자성어는 生者必滅과 會者定離이다. 또 연초에 유명 인사들이 사자성어를 이용할 때면 그 의미에 감동되어 가슴이 뭉쿨해 지는 경우도 있다.

이번 검사 사건중에서 한국 최고의 엘리트를 달리고 있는 김형준 검사(스폰서건, 내연녀 등)는 2013년 국회 국정감사의 자리에서 “검찰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가지고 검사업무에 임했다”고 했다. 또 당시 박영선 법사위원장(현재 더불어 민주당 대표)이 사회를 보던중 갑자기 발언권을 얻어 “공자의 제자 유자의 이야기중에 본립도생(本立道生, 법과 원칙, 기본이 바로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을 말했다.

김부장 검사는 40대 중반으로 S대를 졸업하고 서울 중앙지검, 유엔 대표부 법무관 파견근무를 했다. 전 법무부 장관과 국회의장을 역임한 분의 사위까지 되었으면 자신의 행동이 누구보다 신중했어야 했다. 더욱이 장인 어른은 지난해 골프장 캐디에게 성추행하여 매스콤에 오르 내리고 언론에 사과까지 하였다.

김부장 검사는 “조직과 가족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며 “평생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말은 우리 사회에 3류 유행가 같은 소리로 들린다. 이런 참회의 말을 하기 전에도 김부장의 장인 어른을 생각했다면 나쁜짖을 해서는 안되었다. 장인과 사위는 사회적 직위는 높었으나 양심과 도덕적 의식은 결여되어 있어 허탈감, 배신감 마져든다.

우리 사회의 일부 지식층과 고위 공직자들의 모습을 보면 배울 만큼 배운 사람, 먹고 살만한 사람, 가질 만큼 가진 사람들이 엄청난 사건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성실하게 사는 대다수 국민들을 위해서도 근본적 대수술없이는 이 사회가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청문회를 보면 특권층만의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병역기피는 구정권이나 현정권 가릴것없이 아주 빈번하게 일어난다.

조선왕조에도 자녀가 죄를 지으면 아버지가 가족과 자결하는 경우를 본다. 즉 세자(조선왕조 5대 임금,문종)가 동궁으로 있을때 金吾文의 딸을 세자빈으로 삼으니 곧 휘빈(徽嬪)이다. 문종과 휘빈의 정염(情炎)에 의해 폐서인되었다. 김오문은 딸에게 세자빈의 정장의 옷을 입히고 우물 그룻을 각 상에 놓고는 북향사배가 끝나고는 비상 두 봉지를 꺼내고는 각기 마시도록 했다. 부인과 딸의 최후를 지켜본 김오문은 도총재의 관복을 입고는 대궐을 향해 사배를 올린 후 3척 언월도를 뽑아 배를 갈라 최후를 마쳤다.

새로 간택된 세자빈 종부소윤 봉려(奉礪)의 딸 봉씨도 구중궁궐속에서 은밀한 동성간의 애정행위였다. 봉려는 자기의 허리띠를 딸에게 풀어 주며 자결토록했다. 봉려는 “새 세상에서는 부디 잘 살아라. 다시 태어날 때는 남자로 태어 나거라. 너를 목 졸라 죽이는 아비의 마음은 어떻겠느냐.” 봉려는 딸의 시신을 잘 거두고 북향사배로 임금께 하직을 고하고는 자결했다.” 세종 1436년 10월이였다. 그 뒤 세자빈은 단종의 어머니(현덕왕후)이다.

이와같이 공직의 길이 얼마나 힘들고 도덕적이고 책임감있는 자리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부정부패는 끝이 보이지 않고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트럼프, 필리핀 대통령 두테르트 같은 막말의 인물들이 왜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는지를 보면 본립도생(本立道生, 법과 원칙, 기본이 바로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이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37회 최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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