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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인도.네팔(8)룸비니/부처님 탄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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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그네s 작성일 2008-02-23 15:31 댓글 0건 조회 8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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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5~25.델리- 카투만두- 포카라- 룸비니- 바라나시- 아그라- 시크리- 자이프루- 델리)

인도.네팔(8)룸비니/포카라- 사랑코트- 룸비니- 부처님 탄생지

날짜: 2008.1.18(매우흐림)

10시간 가까히 걸려 버스로 도착한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동산 입구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원달러"하면서 계속 쫒아온다. 
하얀 코끼리가 몸에 들어와 잉태를 한 마야부인이 해산을 하기 위해 친정인 콜리성으로 길을 떠났던 늦은 봄날, 
이곳 룸비니 동산에는 아름다운 꽃들과 오색의 나비들이 날아 다니고 수많은 새들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자연에 도취한 마야부인은 향기로운 무우수 나무의 꽃가지를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마야부인은 산기를 느꼈고 그대로 무우수 나무의 가지를 붙잡고서 석가모니를 낳았던 것이다. 
위대한 성자의 탄생. 그 당시야 신이 아닌 한 인간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인간 싯다르타가 부처가 되어 모든 중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역사가 시작 되는 순간이었다. 그곳이 바로 여기 룸비니이다.

마야당 옆으로 작은 연못이 있는데, 양 옆으로 큰 보리수 나무 두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 부처님을 그리워하면서 룸비니를 찾은 아난존자가 심은 나무란다. 
인류의 큰 스승을 평생동안 모셨지만 ‘부처님을 잘못 모신 세가지 죄’로 인해 교단에서 배척당한 아난존자다. 
그가 이곳에서 보리수 나무를 심으면서 그리움과 통한의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을 것인가. 
바람에 나뭇잎끼리 부딪쳐 내는 소리가 마치 슬픔에 빠진 아난존자의 울음소리처럼 들려왔다

마야부인은 석가모니를 낳고 출산 후유증으로 이레만에 죽고 이모가 대모 역할을 하였다. 
마야부인의 죽음은 성인이 태어난 몸에 다시 인간을 잉태 할 수 없는 이치에서 찾을 수 있으며, 석존은 성도 후에 도리천에 올라 
죽은 어머니를 찾아 교화시켰다. 이모와 석가족 여인들은 훗날 바이샬리에서 부처님께 귀의하여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다. 


부처님 탄생지 길 입구에 파파야 


매표소전엔 이렇듯 상점들이 있다.


부처님 탄생지 정문


붉은 건물안에 마야부인의 생가터가 보존 되어있다.


탄생 후 첫 목욕을 하셨던 연못과 보리수나무

저 나무는 마야부인이 부처님을 낳으실 때 붙잡고 힘을 쓰셨다는 나무의 손자뻘 된다고 한다.
룸비니는 부처님 탄생지이지만 신도수는 그 곳 인구의 1% 미만이라고 해서 놀랬다.


내부 전경(터)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탄생후 첫 발자욱 보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쇼카석주 사천왕이 태자를 안았던 자리에 아쇼카왕이 즉위 20년경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를 순례하고 석주를 세웠다. 추나르산 사암을 연마하여 몸통을 만들고 명문을 새겼으며, 머리부분은 말 모양의 조각상을 올려놓았다. 후에 석주는 낙뢰를 맞아 중간이 부러졌으며 상부의 말머리 조각 부분은 찾지 못하였다. 다만 석주에서 10m 북쪽에서 말갈기 일부조각이 발견되었다. 석주의 중간에는 지금도 선명한 아쇼카왕 명문 5줄이 새겨져 있다. “천애희견왕(아쇼카왕)은 관정 제 20년 이 곳에 스스로와 친히 참배하였다. 여기서 불타 석가모니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의 상을 만들고 석주를 건립토록 하였다. 이곳에서 세존의 탄생하신 것을(기념하기 위해서다).룸비니 마을의 조세를 면제해 주고, 또 생산의 1/8만 지불케 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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