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마당

기별게시판

50기 흰 고무신을 신고 오신 선생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東 泉 작성일 2006-09-14 13:00 댓글 0건 조회 447회

본문

흰 고무신을 신고 오신 선생님

졸업을 앞둔 중학교 3학년 어느 날이었다.
마당에 지게를 세워놓고 땔감을 준비하고 있는데
영어를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 흰 고무신을
신고 찾아오셨다.

당시 학생회 간부였던 나는,
부끄럽다거나 싫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누추한 집으로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선생님의 방문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바위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던 선생님께서는
누런 월급봉투를 통째로 내밀며 부모님과 상의해서
진학 준비를 서두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3년 간 학비 일체를 책임질 테니
전혀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엉겁결에 봉투를 받아든 나는,
집에 들렀다가 가시라는 말도 못한 채 멀어져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날 밤 나는 잠을 못 이루며 갈등했다.
결국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 힘으로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나는 다음날 아침,
선생님께 월급봉투를 돌려드렸다.

졸업 후 1년 동안 서울에서 주경야독하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시게 되자 공부를 그만두고
가족을 돌보았다.

그 후 내가 군 생활을 마치기까지,
가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
군에서 제대한 후에도 우리 가족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다행히도 지난날의
고생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모든 일이
잘 풀려 사십을 훌쩍 넘긴 지금은
그 시절에 쓴 빛바랜 일기장을 들춰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깊고
넓은 사랑과 관심을 선생님으로부터 받았고,
그 사랑은 내 삶을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몇 년 전, 선생님이 경상도 밀양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로 인사를 드렸더니
삼십 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선생님은
옛날의 그 일을 기억하고 계셨다.

지금도 졸업과 입학의 때가 되면 흰 고무신을 신고
찾아오셨던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할때면
혼자 눈물짓곤 한다.  (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