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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 불행 중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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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6-09-29 12:37 댓글 0건 조회 9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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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안 들어오는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시간을 보았다.
밤 열두시도 모자라 시계 바늘은
다음 날인 새벽 두시를 지나고 있었다.

처음엔
‘이 눔의 인간 들어오기만 해봐라.’
들어오면 죽일 듯이 덤벼들 각오를 단단히 한 내 마음의 표현이다.

정말 그랬다.
요즈음 들어 잦은 술자리와 늦은 귀가에 잔뜩 독이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퇴근 길
소공 동 골목길에서 풍겨 오는 구수한 음식 냄새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오늘도 이 눔의 인간은 친구들과 어디서 한 잔을 기울이고 있나보다.

그래도 그렇지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귀가를 하지 않을까?
혹시?
‘이 눔의 인간 여자까지 있는 게 아니야?’
혼자 귀가를 하지 않은 남편을 생각하며 갖가지 상상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의심은 근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래 지금이라도 들어오면 용서해 줄께.’
‘얼른 들어오기나 해라.’
불안한 마음에 두 손을 비비며 방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 보니
웬 비가 그리도 많이 내리는지 괜히 밖에 나가 본 것도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삼십 분 후에 기다리던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마자 살아 온 것을 직감한 나는
“으~이~ 씨 뭐야?”
하며 혼잣말로 연습했던 공격적인 단어를 쏟아 부으려고 하는데........
“아니 이게 뭐야?”
내 눈에 들어 온 남편의 모습은 형편없었다.

“택시비 좀 줘.”
손을 내밀며 이 새벽에 택시비를 달라고 한다.
어이없고 기가 차지만
기다리고 있는 택시 기사님 때문에 할 수 없이 지갑을 열었다.

택시비를 받은 기사님은 말없이 가버렸다.

택시비를 내고 들어 온 나 보다 먼저 들어 온 남편은
방바닥에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했다.

“으~이~구 내 팔자야.”
“우리 친정아버지 수발에도 넌덜머리가 나는데 또 이게 뭐야?”
소리를 지르며 양복을 벗기려 했지만
잔뜩 비에 젖은 양복은 마음먹은 대로 잘 벗겨지지가 않았다.

“아~ 좀 이렇게 해봐.”
“정말 이런 술을 도대체 왜 먹어?”
“정말 미치겠다.”
듣고 있는지 자고 있는지도 모른 체
혼자 성질나는 대로 지껄여댔다.

다 벗기고 나도 뻣뻣한 남편의 양복을
잔뜩 열 받은 김에 현관문을 열고 확 집어 던져 버렸다.

‘누가 집어가든지 말든지.’

그리고 밤새 열이 식지도 않았는데
해는
밤 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둥 멀쩡하게 우리 집 방안을 훤히 비추었다.

“어~ 내 지갑.”
“어~ 내 삐삐.”
일어나자마자 남편은 지갑과 삐삐를 찾는다.

“내 지갑 어디 있어?”
남편은 나를 범인으로 모는 눈초리로 물어 본다.

“내가 어떻게 알아?”
큰 소리로 답변한다.

모른다는 나의 말에 남편은
어젯밤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두 손을 마주친다.

“참!”

이제야 기억이 나는 가 보다.

밖으로 던져 버렸다던 양복을 주워 와서 주머니를 뒤져 보고는
어제의 일들을 늘어놓는다.

“어제 술 한 잔하고 회사(시청 역)에서 마지막 지하철을 탔어.”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 다음 역을 보면 아직도 더 가야하고.”
“그러다가 마지막 한 정거장을 놓고 기억이 없네.”
남편이 늘어놓는 말에 난 한심하다는 듯 맞장구를 친다.

“잘 한다. 그래 잘 하고 다닌다고.” 하면서.......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 버스 정류장 기사 실이더라고.”
말을 듣고 있자니 상황이 점점 이상하다고 생각이 든 나는
남편 곁에 바짝 다가앉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남편 곁에 바짝 다가앉은 나는 턱에 숨이 막힐 정도로 되물었다.

“기사 아저씨들이 길거리에 누워 비를 맞고 있는 나를 발견해서 기사 실에다 뉘였데.”
“미안하기도 하고 정신도 없고 해서 지나가는 택시를 불렀어.”
택시가 서길 레 ........
“아저씨 의정부 갑시다.” 했더니
이 아저씨 나를 빤히 보시더니만
“아저씨 여기가 의정부인데 무슨 의정부를 가자고 해요?”
아~ 이러시는 거야.

‘참 어처구니없는 행동만 하고 다니는구먼.’
속으로 계속 못 마땅하기에 남편이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난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어제 택시를 타고 오긴 했는데 ........”
“누가 택시비를 냈지?”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인간아! 택시비를 내긴 누가 내? 내가 냈다. 기억 안 나?” 하며 내따 소리를 질렀다.

“비는 쫄딱 맞고 그 새벽에 택시비를 달라고 하고선.”
“택시 기사님은 밖에 기다리고 있고. 내가 안 줄라고 하다가 아저씨 기다리니까 줬다.”

“으~이~그. 그래도 우산은 반접은 채(버섯 모양) 손에 꼭 쥐고 있더라.”
“우산이 애인이라도 되냐?”
(우리끼리의 대화이기에 반말임을 이해하여 주시기를.......화가 잔뜩 나 있음도 헤아려 주시고요.ㅋㅋ)

잔뜩 화가 섞인 내 말에 어제의 일들이 하나하나 되 살아 나는 가
“어~ 내 반지.” 하며 자기 손가락을 들여다본다.
“진짜 반지도 없네.”
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남편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진짜 남편 손에는 결혼반지도 없었다.

“그럼 뭐야?”
“결혼반지와 지갑에 있는 카드 현금 모두 털렸단 말이야?”
그제 서야 둘이 사태 파악에 들어갔다.

자기 자신의 뒤통수를 만져 보던 남편이
“이것 좀 봐. 혹이 났다.”
남편의 행동이 갈수록 태산이었다.

“에~이~그. 죽지 않고 살아 온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정말이었다.
그 정도로 무언가에 얻어맞고 또 몽땅 털리고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면
살아 와서 어제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 남편이 새삼 다시 보이게 되었다.

정말 감사하는 마음 반
남편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괘씸한 마음 반이 솔직한 심정이었으니까.

이런 일을 보고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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