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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 풍경이 있는 Essay 24 - "쌍팔년도에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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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버릇처럼 ‘쌍팔년도’ 라고 불리던 해가 있었습니다.
그해,
우리는 사상최초로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하계올림픽 붐에 들떠 있었고, 전두환이 백담사에 연금되는 모습을 흑백TV를 통해 생생히 지켜봐야 했습니다. 지강헌이라는 탈주범이 인질극을 벌이며 ‘유전무죄 무전유죄’ 라고 외치던 모습이 TV를 통해 생중계되었고, 이상은이라는 꺽다리 여가수가 온몸을 흔들며 ‘담다디’ 라는 가요를 유행시켜 동해안 해수욕장들은 온통 담다디 열풍으로 가득 찼던 기억들도 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물결이 거세던 28년 전, 우리는 대부분 35세 전후였습니다. 당시 한창 혈기 넘쳤던 우리는 저마다 사회의 각처에서 정말 치열하게 일했던 기억들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갓 입학을 하여 학부모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시절이었습니다.
모두가 집단최면에 걸린 듯 격동하던 쌍팔년도,
평소 자주 어울리던 멤버들과 함께 성내동 광장 앞에 하얀미소라는 파전집을 비롯해 막걸리집을 전전하였고, 이름은 잊었지만 옥천동 옥천예식장 뒷골목 주막에서 젓가락 장단으로 하루를 마감하던 시절도 아마 쌍팔년도의 대표되는 우리들의 풍속화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평소 술에 약한 내가 먼저 떨어져 잠들자 친구들이 팬티에 술집아가씨 립스틱을 발라버리는 바람에 집에 들어가 혼찌검을 당했던 기억은 아직 생생하기만 한데... 이제 그 악동들은 젊잖은 노털들이 되어 버리고 그 날을 소중하고도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한 장면으로 추억하는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비록 반지하 셋방에 살지만 이웃과 허물없이 음식을 나눠먹고, 이웃의 자식들을 자기 자식인양 도닥여주고 감싸 안아주는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가끔씩 다투면서도 아픔도 외로움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골목친구들의 끈끈한 우정과 사랑을 다룬 서울 쌍문동 한 골목, 다섯 가족의 왁자지껄한 코믹 가족극 ‘응답하라 1988’이 엊그제 종영을 했습니다.
응팔을 통해 지난 3개월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지요. 때로는 배꼽을 잡고 웃었고, 때로는 코끝을 시큼하게 향수를 자극했던 ‘응팔’도 끝나고, 날씨는 추워지고 밤은 길고 긴데 얘들아! 이제 뭐하고 놀지?
응답하라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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