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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백로가와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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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돈길 작성일 2017-02-04 07:13 댓글 1건 조회 4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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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로가(白鷺歌)와 반기문 

                                                                                             2017.2.4

정몽주는 고려말 유명한 충신이다.

이성계(당시 67세)가 낙마하였다는 소식이 서울 송도에 그 늙은이도 늙었구만 하는 소식이 펴져 나갔다. 이성계는 깊은 신음소리만 낼뿐 생사를 예측할 수 없었다.

정몽주는 문병을 맡치고 이방원이와 대좌하게 되었다.

“포은 선생 술이나 한잔드시며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이나 해 주십시오”

“내가 무슨 대학자라고 좋은 말이 있겠소”

이방원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정몽주를 떠보기 위해 시조 한 수를 유려하게 뽑아냈다(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기 얽혀 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후세에 널리 희자되는 이방원의 萬壽山노래였다. 즉 썩어져가는 고려의 왕실만 붙들고 고집부리지 말고 칡덩굴 처럼 얽혀서 사이좋게 사는 것이 어떠냐는 노래이다.

정몽주는 다 듣고 나서 좋은 시라고 칭찬하였다(丹心歌). 젊은 사람의 시를 듣고 있을수 없으니 내 시도 한번 들어보게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시도 시지만 이방원이는 포은과 같이 정치할 수 없다는 것을 통감한다.

이방원과 정몽주는 헤어진 후 돌아 오는길에 자주 가는 술집에 들였다.

막걸리와 생선 지지미가 나왔다. 뿌연 막걸리에 一杯一杯復一杯 대작하는 사람없이 혼자서 연거푸 석잔을 마신 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정몽주는 혼자 울고 있었다. 녹사는 대감마님 해가 서산에 지고 있습니다. 어느덧 만수산에 서늘한 산 그림자가 점점 드리워져 정몽주는 말에 올랐다.

무심한 말은 정몽주를 싣고 선죽교에 다다랐다.

“멈추어라” 조영규가 가로 막아 서며 외쳤다. 조영규는 녹사를 철편으로 내리쳤다. 만고의 충신 정몽주는 선죽교 다리 위에서 쓰러 지고 말았다.

이때가 공양왕 4년 4월 4일이였다.

정몽주는 영일현 출신으로 지주사 정습명의 후손이며 어머니 이씨가 잉태했을때 난초 화분을 안는 꿈을 꾸었기에 몽란 또는 몽룡이라고도 불렀다.

지난밤 흉몽에 시달렸던 팔순 노모가 이성계 집을 향하는 귀한 아들 정몽주를 문 밖까지 따라나와 백로가(白鷺歌)를 불렀다.


“까마귀 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들이 너의 횐옷을 시샘하나니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느라”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묻는 정몽주가 세상을 떠난 후 ‘죽어도 아들을 지키겠노라’ 노모의 소망에 따라 선죽교 옆에 노모의 비석을 세웠다.

한이 맺힌 어머니의 눈물이 비석에 마를 날이 없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즉 非命橫死

흔히들 아버지가 돌아 가시면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것 같다고 하여 천붕이라 하고 자식이 먼저 죽으면 창자가 끊어 지는것 보다 더 아프다고 하여 천척이라 하지 않는가?

포은 정몽주의 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에 위치하고 있다. 포은의 묘는 규모, 주위시설, 잔디관리, 봉분(난관석, 병풍석 등)관리 등에서 볼 때 국내에서는 묘로서는 가장 잘 되어 있는것 같았다.

포은의 묘가 정해진 유래는 포은의 고향인 영천으로 천묘지를 정하고 면례행사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이르러 잠시 멈추어 쉬고 있을때 갑자기 돌풍이 불어 명정(銘旌)이 하늘높이 날아가 이 곳(현 묘소)에 떨어졌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곳이 명당 자리라고 하여 포은의 유택을 이곳으로 정하여 경순택주 경주이씨와 합장하였다고 한다.

반기문은 국내 정치에 감동을 주지 못했다. 인격 살해, 가짜 뉴스, 현직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나체 풍자화 등 악의적 공격, 혹독한 검증에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어쩌면 반기문은 정몽주의 팔순 노모가 부른 백로가(白鷺歌) “까마귀 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 . .”가 적절한 표현아닐까 싶다.

                                          37회 최돈길

* 백로가에 관한 글은 필자가 그 동안 한국사를 쓰기 위해 준비한 내용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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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님의 댓글

바람소리 작성일

인생의 대부분을 치외법권(治外法權)의 특권을 누리며 가는 곳 마다 칙사 대접을 받으시던 분의 순진한 호기와 필연적인 추락을 목도하며 대한민국의 정치판 파고가 세파보다 더 매몰차고 포악함을 유추해 봤다네
진행중이신 최박사의 한국사가 암울한 이 시대를 밝혀줄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