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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이젠 춫불과 태극기를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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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돈길 작성일 2017-03-12 05:06 댓글 1건 조회 50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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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촟불과 태극기를 버리자 
                                                                           2017.3.11

어제 필자의 집과 지근거리에 있는 옛 박근혜 신당동 집을 찿았다. 그 집은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듣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박근혜)은 어린 동생 둘을 데리고 청와대를 떠나 신당당으로 간 집이다.

이 집이 오늘날 그의 성격을 외곬수를 만들었다. 일반 사람도 견디기 힘든 청와대 초 호화생활하다가 갑자기 골목을 지나 골목을 가야하니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이때가 1979년 은둔생활의 시작이다. 27세의 처녀가 정신적으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는 “남들은 아무도 몰라요. 제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 왔는지!”

"파리 유학중 아 어머니! ‘암살’ 신문을 보고는 온몸에 수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쇼크를 받았다. 아버지는 화장실에 들어가 한 동안 나오지 않으시고 오열을 하셨다. 그리고 1979년 10월 전화벨이 울린다. “일어나 몸차림을 해주십시오” 순간 둥 뒤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각하께서 돌아 가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얼어 붙는 것 같았다. 밖으로 비명이 새어나갈까 입을 틀어막고 근영이, 지만이 셋이서 쉴새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이 내용은 박근혜의 자서전 일부 인용)

인생의 허무함 냉정함은 아무도 모른다. 어느날 박근혜는 에레베이터를 에서 아버지 시절 장관을 만났는데 외면을 하는것을 보고는 좌절감, 비애 등 이런 과거를 딛고 정치판에 들어섰다. 18년의 은둔생활이 1997년 10월부터 박근혜 정치가 시작된다.

필자를 비롯한 박정희의 향수를 알면 박근혜와 연결을 시켰던것이 “큰 패착”이였다. 지금도 우매한 국민들은 박근혜하면 불쌍한 처녀, 어머니와 아버지는 총탄에 맞아 죽은 딸, 시집도 못가고 혼자 사는 처녀,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지 대단한 것도 아닌데 하는 너무나 감상적으로 생각한다.

박근혜의 연설중에는 곳곳에 한(恨)이 맺힌 연설을 볼수 있다. 2004. 3월 홍사덕과 대표경선에서 “저는 부모님도 없고,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했을때 청중은 숙연해 했다. 더욱이 부모님은 총에 죽고, 여동생은 결혼과 이혼, 남동생은 필로폰 주사로 왕복 구속 되는 등 이러한 것들이 국민들로 부터 불쌍한 박근혜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박근혜의 고집을 알면서 또는 모르는척 쉽게 넘겨 버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최태민 목사와 박근혜에 대해 수차례 떼어 내려고 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하기야 아버지 36세, 어머니 28세에 첫딸이니 얼마나 귀여웠을까. 김재규 정보부장을 불러 왜 박근혜 관리를 제대로 못하느냐고 야단쳤다. 이 시기에 바퀴벌레 처럼 붙은 것이 최순실이다.

다시 정치판에 진입해서는 특유의 고집이 발생했다. 첫째 고집이 세종시 이전이다. 당시 세종시 이전 반대한 대표적 인물이 박세일 박사이다. 박 박사는 필자와 같은 직장에서 바로 옆방에서 7∼8년을 같이 근무한 경험이 있다. 1차 암 수술 후 회복과정에 있을때 넌 왜 쓸테없이 세종시에 대해 박근혜에게 각을 세워 이 모양이냐고 했더니 “내 말이 맞잖아” 결국 세종시는 이전을 했다. 이전한 결과 세종시의 낭비는 돈으로 계산이 되는가?

둘째 고집이 선진화법이다. 박근혜가 제시한 4대 개혁(금융,교육,노조,공공)은 우리 사회에 매우 적절한 개혁이다. 그러나 선진화법은 야당의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선진화법은 향후 어느 누가 어느 당이 집권해도 국회의원 의석수가 3분의 2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구조이다.

가까운 일본을 보자. 아베는 참의원, 중의원 모두 3분의 2 이상을 가지고 있으니 아베는 정치, 외교, 경제 등 자기가 원하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언제나 할 수 있다. 외교를 보자.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후 세계 처음으로 만난 사람, 취임식에서 두 번째로 만난 사람. 정치는 아베에게 잘못 보이면 그날로 정치판을 떠날 정도이다. 지지율은 60%를 넘은 것이 오래 되었다. 일본 총리중 최장수 총리이고 마음만 먹으면 종신 총리도 가능하다. 경제는 말이 필요없다. 대학 취업율과 부동산 가격은 잃어버린 20년을 회복하였다. 일본의 아베는 모든 분야에 자신감이 붙었다.

앞으로 우리는 선진화법 때문에 어느 누가 집권을 해도 현 제도로는 위기 탈출은 어려운 구조이다. 협치 또는 연정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셋째 고집은 지난해 4.13총선에 공천을 개입하여 여소야대를 만든 장본인이 박근혜이다. 박근혜는 천추의 한이 4.13총선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의 국격 상승을 꺽은 것이 4.13이다. 탄핵 판결의 원인도 4.13이다. 이외에도 지지율 5%일때 숭부수를 던졌어야 했는데 너무나 아쉽다.

지금 광장에는 점령군 같은 촟불승리축하공연과 태극기는 울며 불며 퍼질러 앉아 대성통곡을 한다. 3.10 탄핵 파면은 향후 어느 누가 집권해도 예외는 없다. 철 지난 이념은 발 붙힐 틈이 없어졌다. 이제는 증오와 분열을 가라 앉혀야 한다. 필자도 “태극기를 버렸다.” 5월에 있을 대권주자들은 미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여 국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이제 박근혜는 두 번이 없다. 국민에게 그리고 역사에 남길 진실된 메세지를 남기는 것이 전 대통령의 도리이다. 그리고 청와대 앞 잔디밭에서 한 없이 울어라. 국민들은 3남매가 슬기롭게 사는것을 보고 싶을 것이다.

                                      37회 최 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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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님의 댓글

바람소리 작성일

동의 하지만 100%에 미치지못해 죄송 하다네
모든 인간이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실현된적이 없듯이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삶과 죽음의 간극처럼 결국 좁혀지지않는 거리가 아닌가 싶다네
실패할 이유가 없는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를 모두가 알고 있듯 이론이 현실과 역사를 지배하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라는 점이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치열한 싸움은 대한민국의 엄연한 현실이며 뿐더려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드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촛불집회가 민심라면 태극기집회 역시 똑같은 민심 아니란 근거가 어디에 있으리.
철지난 이념은 발붙일 큼이 없다는 최박사의 지적에 대해 동의하기엔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볼때 현실을
간과하지 못한 너무 이른 이상에 불과하지않나 싶네.
북한이 존재하는 한  남한은 존재할거고 북한이 존재하는 한 좌파가 존재하고 남한이 존재하는 한 우파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누가 부정하리.
보수와 진보는 우파와 좌파를 위장하기 위한 탈바가지에 아닌가
이제 그 탈바가지를 벗어 던지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민낯으로 치열하게 싸우는 이 현상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이 아닐지.
남한은 우파가 목숨걸고 세우고 지켜온 나라이 듯 북한 역시 좌파가 목숨걸고 지키고 있는 나라인데
왜 좌파가 남한에서 설치는가 묻고 싶다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6, 25 참전용사들을 마치 이승만 정권을 위해 싸운 꼰대로 몰아가고 태극기 집회가 마치 박근혜를 위해 태극기를 든 일당 받고 참가한 노무자로 치부해 버리는 집단이 존재하는 한, 광장의 대립은 끝을 맺지못할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헌재의 결과를 보면서 100% 지지로 의결된 사안은 반드시 재심사하는 이스라엘을 생각해 봤다네
이미 파면된 박근혜에 대한 적나라한 이력이 태극기집회와 절대적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전개된 논조에 대한 실망감,  작지않네.
나의 답글이 37기의 진정한 지성, 친구 최돈길과 나의 우정이 전혀 상관 없음을 알아주시길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