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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설중(雪中)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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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떠나는지 몰라도
우리는 다 길 떠나는 나그네다
가다가 만나면 더 좋은 인연일 터이나
그 또한 언젠가는 헤어 질 것이니
굳이
기대를 갖일게 무언가
<
솜 같은 함박눈이
바로 코 앞을 분간키 어렵다
아이젠의 뽀족날도 쌓여 가는 눈길에는 마음을 기댈수 없다
허기야
사람사는 어디라도 존재의 안전한 핵인(核因)은 없는 것이니...
지나온 산사의 담벼락에 그려져 있던 심우도(尋牛圖)를 생각해 본다
본성을 찾아 나서는 尋牛에서 본성과 현존 자아가 일치되는(忘牛在人) 단계를 걸치면
본성도 현존자아도 모두 사라진 하나된 단계가 오나니
이것이 곧 반본환원(反本還源)인 세상근원에 합일하는 대도에 달한다는 것
내 본래 수행자가 아니니
그 심오한 이치야 더 알아서 무엇하랴만
다만, '나 자신은 결국 나 자신에게 있음' 이라는 표의(表意)인듯 함은 알것 같으니
이 곱지않은 설중행(雪中行)이 결코 헛됨은 아닌 듯
백년 노송의 덕지덕지 겉갈피에 어리디 어린 녀석이 염치도 좋다
"뎃끼! 버릇없이!"
분명 정수리에 장죽(長竹) 곰방대가 벼락치듯 내렸으련만
허허~ 저 아해놈 눈하나 깜짝 없네
하기사
그도 눈(雪)은 눈이니까....
사랑하고 살아도 찰라같이 짧은데...
네가 오면 나도 가는 것인데....
너 옴을 <짐>으로 여김은 그것은 다만 욕심 그것일 뿐인데...
텅 비어야 새것이 들어옴을 못 깨달으니
충만의 경지가 여백과 공간에 있음을 제 어찌 알손가
한 생각 버려야
진정(眞正)의 공부가 거기서 울림을 어찌 알손가
오르는 것을 욕심이라 매도 말라
우뚝솟은 산 훨훨 불타는 짙푸른 숲
나는 그 안에서 오래오래 잃어 버린 나의 소(牛)를 찾는거다
내려 가는 것을 포기라 비웃지 말라
사슴을 어루고 넘엇곳 골짜기에서 울어오는 뻐꾸기 소리나는 그 속에서
힘들여 찾은 소(牛)에게 향기로운 풀을 뜯기게 하려 함이다
"이렇게 눈오는 날 어찌 한잔 술 없을 소냐"
대답도 듣지 않고 주섬 주섬 배낭에서 곡주병을 꺼내면서 나를 슬쩍 쳐다본다
"마실려?"
은근 열나서 눈 쏟아지는 하늘 바라보니
허어라~~
회색 천공에서 점점히 도봉(道峰)의 이야기가 따라서 쏟아져 내려 오는구나
"아직도 금주야? 거 오래 가네"
그러더니 하얀 알미늄 종지컵에 곡주를 따른다
우유빛 액체가 돌돌돌 소리내며 가득 채워진다.
향긋한 내음이 코끝을 간즈럽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것이 술 보고 못 마시는 것
벌컥 벌컥 안주도 없이 연거푸 두잔을 들이킨다
하염없이 그 꼴을 보자하니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핑~ 돈다
오우~~~
대신 그때 나는 첨 알았다
여인은 술 마실때 목젖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
"킥킥~~ 천하의 심씨 가문 자손이 술 한잔 못먹다니...
나 오늘 취함 당신이 책임질거지?"
혼자서 왼손으로 권하고 오른손으로 마시고 제법 큰 곡주한병을 순식간에 다 마시더니
어언 혀가 옆으로 꼬부라져 간다
꼴같잖아서 버럭 소래기를 지른다
"그래! 책임질테니 더 있으믄 더 마시그라!"
지난 봄 어느 날
친구들과 올랐을때 군데 군데 산벚나무에 희다 못해 붉어지는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계곡에는 이제 비슷한 색깔의 눈꽃들이 대신하고 있다
<
눈은 꽃잎 위에 머므리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꽃잎에게 연연(戀戀)한 입맟움을 하고
모양도 그림자도 없이 그저 한줄기 그리움으로 닿았다가 서운함으로 사라진다
산사의 단청에 꽃의 사모( 思慕)가 물들어 있다 해도
그건 여리고 착한 영혼들에게 주는 상실의 흔적일 뿐
묻노니
천하에 변치 않음이 있느냐
마음이 속진을 벗어나면 진흙도 바위처럼 굳고 굳음일세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태우고
서쪽 울타리에서 매화를 따니
유연히 바라보는 북한산에는 백설이 만건곤하구나
이보게
무어 그리 바빠서 종종 걸음으로 앞으로만 가는가
더러는 아무것도 모른채 쉬엄쉬엄 고개 돌리며 가게나
모두가 허상(虛像)이니
보기는 하되 마음에는 담지 말게
사천상(四天像)이 눈 부릅뜨고 노려 봄은
세월이지 그대가 아니라네
너도 나도
동자심(童子心) 갖는다면
뭐 그리 마음 문 닫아 걸리
허우 허우 눈길을 헤치면서 내닫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연인 한 쌍이 다정히 산문에 기대있다
<
불타는 단심(丹心)으로 뿜어냈던 열정도
세월가면 빛 바래고
그 위에
사랑과 미움이 교차되어 지울수 없는 얼룩이 생기면
연인들아
어쩌면 너는 너 나는 나의
외로운 나그네길을 걸을찌도 모른다네
그것이
염량세태 사람사는 길인지도 모른다네
눈오는 산속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가만히 귀 기울리면 사르륵 사르륵 눈꽃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만 들린다
"어~ 저기 무신 소리래?"
"무슨? 눈덩이 떨어지는 소리겠지"
"아니야! 자세히 들어 봐...투두둑 소리는 그렇다 치고....푸르륵 소리는 뭔데?"
"흠~ 혹시 장끼 날개치는 소리?"
"에이~ 사람 빗발치는 이런 야산에 무신 꿩이 있겠어"
외롭다
나란히 있지만 흰 눈덩이를 머리에 이고 멀찍이 떨어져 있어선지 외로워만 보인다
"괜찮아?"
"뭐가?"
"아까 술 한병 혼자서 다 마셨잖아?"
"흥! 그깐거 코끼리코에 비스켓이지"
"허~ 전엔 않그렇더니 은제 술고래가 되었남?"
"이기 다 자기 땜시 생긴게지 "
"돌아 앉아야 얼굴이 나오지"
"싫어!"
도봉산의 명물 <섹스폰 나그네>
20여년전 우리 순희가 붙혀준 이름이다
아직도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이다
계절에 따라 차림새만 다를뿐
"번지없는 주막 한곡 불러 달랠까?"
말해 놓고 슬쩍 돌아보니
동행여인 고개를 외로 꼬고 냉냉히 쏘아 붙힌다
"우리씨 한테나 물어보지"
(우리씨?)
끌끌끌~~~ 승질머리 하고는~~~~~~
<이날 12시부터 입산통제>
ㅡ2011년 1월 그날 억수로 눈 쏟아졌다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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