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마당

기별게시판

37기 설중(雪中) 여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11-01-26 10:57 댓글 0건 조회 720회

본문


언제 떠나는지 몰라도
우리는 다 길 떠나는 나그네다
가다가 만나면 더 좋은 인연일 터이나
그 또한 언젠가는 헤어 질 것이니
굳이
기대를 갖일게 무언가

1146A24C4D3CF076366DF3<

솜 같은 함박눈이
바로 코 앞을 분간키 어렵다
아이젠의 뽀족날도 쌓여 가는 눈길에는 마음을 기댈수 없다
허기야
사람사는 어디라도 존재의 안전한 핵인(核因)은 없는 것이니...

1706134C4D3D0B2233521B

지나온 산사의 담벼락에 그려져 있던 심우도(尋牛圖)를 생각해 본다
본성을 찾아 나서는 尋牛에서 본성과 현존 자아가 일치되는(忘牛在人) 단계를 걸치면
본성도 현존자아도 모두 사라진 하나된 단계가 오나니
이것이 곧 반본환원(反本還源)인 세상근원에 합일하는 대도에 달한다는 것

156F88594D3CE8542F29A3

내 본래 수행자가 아니니
그 심오한 이치야 더 알아서 무엇하랴만
다만, '나 자신은 결국 나 자신에게 있음' 이라는 표의(表意)인듯 함은 알것 같으니
이 곱지않은 설중행(雪中行)이 결코 헛됨은 아닌 듯

1224DC4E4D3CF0DF2E7BF6

백년 노송의 덕지덕지 겉갈피에 어리디 어린 녀석이 염치도 좋다
"뎃끼! 버릇없이!"
분명 정수리에 장죽(長竹) 곰방대가 벼락치듯 내렸으련만
허허~ 저 아해놈 눈하나 깜짝 없네

하기사
그도 눈(雪)은 눈이니까....

1855604D4D3CF13D349CA7

사랑하고 살아도 찰라같이 짧은데...
네가 오면 나도 가는 것인데....
너 옴을 <짐>으로 여김은 그것은 다만 욕심 그것일 뿐인데...

195AC2474D3CF1DC173CEF

텅 비어야 새것이 들어옴을 못 깨달으니
충만의 경지가 여백과 공간에 있음을 제 어찌 알손가

126BF2584D3CE86E2BDA24

한 생각 버려야
진정(眞正)의 공부가 거기서 울림을 어찌 알손가

186D4F584D3CE87129F741

오르는 것을 욕심이라 매도 말라
우뚝솟은 산 훨훨 불타는 짙푸른 숲
나는 그 안에서 오래오래 잃어 버린 나의 소(牛)를 찾는거다

155EFD514D3CE8872D4CCA

내려 가는 것을 포기라 비웃지 말라
사슴을 어루고 넘엇곳 골짜기에서 울어오는 뻐꾸기 소리나는 그 속에서
힘들여 찾은 소(牛)에게 향기로운 풀을 뜯기게 하려 함이다

153A2E504D3CEFD30612D9

"이렇게 눈오는 날 어찌 한잔 술 없을 소냐"
대답도 듣지 않고 주섬 주섬 배낭에서 곡주병을 꺼내면서 나를 슬쩍 쳐다본다

"마실려?"

1577A34F4D3D0BDB0351B7

은근 열나서 눈 쏟아지는 하늘 바라보니
허어라~~
회색 천공에서 점점히 도봉(道峰)의 이야기가 따라서 쏟아져 내려 오는구나

110F844D4D3D0C432953C3

"아직도 금주야? 거 오래 가네"
그러더니 하얀 알미늄 종지컵에 곡주를 따른다
우유빛 액체가 돌돌돌 소리내며 가득 채워진다.
향긋한 내음이 코끝을 간즈럽힌다

194D0D4C4D3CF2553039E7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것이 술 보고 못 마시는 것
벌컥 벌컥 안주도 없이 연거푸 두잔을 들이킨다
하염없이 그 꼴을 보자하니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핑~ 돈다

오우~~~
대신 그때 나는 첨 알았다
여인은 술 마실때 목젖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

1774FF594D3CE8921FA959

"킥킥~~ 천하의 심씨 가문 자손이 술 한잔 못먹다니...
나 오늘 취함 당신이 책임질거지?"
혼자서 왼손으로 권하고 오른손으로 마시고 제법 큰 곡주한병을 순식간에 다 마시더니
어언 혀가 옆으로 꼬부라져 간다
꼴같잖아서 버럭 소래기를 지른다

"그래! 책임질테니 더 있으믄 더 마시그라!"

175E4E514D3CE8AB387CA7

지난 봄 어느 날
친구들과 올랐을때 군데 군데 산벚나무에 희다 못해 붉어지는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계곡에는 이제 비슷한 색깔의 눈꽃들이 대신하고 있다

1317E5344D3D29EA06B840<

눈은 꽃잎 위에 머므리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꽃잎에게 연연(戀戀)한 입맟움을 하고
모양도 그림자도 없이 그저 한줄기 그리움으로 닿았다가 서운함으로 사라진다

1460A6354D3CF35B22D528

15071A374D3CF5F0068636

산사의 단청에 꽃의 사모( 思慕)가 물들어 있다 해도
그건 여리고 착한 영혼들에게 주는 상실의 흔적일 뿐

1572C8594D3CE89417EC63

묻노니
천하에 변치 않음이 있느냐
마음이 속진을 벗어나면 진흙도 바위처럼 굳고 굳음일세

14721E594D3CE896289292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태우고
서쪽 울타리에서 매화를 따니
유연히 바라보는 북한산에는 백설이 만건곤하구나

135D5A514D3CE89B3605AE

이보게
무어 그리 바빠서 종종 걸음으로 앞으로만 가는가
더러는 아무것도 모른채 쉬엄쉬엄 고개 돌리며 가게나

1414CF554D3CE8C3201DF5

모두가 허상(虛像)이니
보기는 하되 마음에는 담지 말게

175086394D3CF50B06D4A4

사천상(四天像)이 눈 부릅뜨고 노려 봄은
세월이지 그대가 아니라네

207909524D3CE94117173E

너도 나도
동자심(童子心) 갖는다면
뭐 그리 마음 문 닫아 걸리

161B2B384D3CF69B065E59

허우 허우 눈길을 헤치면서 내닫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연인 한 쌍이 다정히 산문에 기대있다

1460A6354D3CF3D025F0D5<

불타는 단심(丹心)으로 뿜어냈던 열정도
세월가면 빛 바래고

143E88364D3CF43E1C5E02

그 위에
사랑과 미움이 교차되어 지울수 없는 얼룩이 생기면

201548554D3CE8B91DEEC9

연인들아
어쩌면 너는 너 나는 나의
외로운 나그네길을 걸을찌도 모른다네
그것이
염량세태 사람사는 길인지도 모른다네

180FED4D4D3D0EA32F3416

205F8B4B4D3D0DF7282828

눈오는 산속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가만히 귀 기울리면 사르륵 사르륵 눈꽃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만 들린다

"어~ 저기 무신 소리래?"

186F35594D3CE933348FE6

"무슨? 눈덩이 떨어지는 소리겠지"
"아니야! 자세히 들어 봐...투두둑 소리는 그렇다 치고....푸르륵 소리는 뭔데?"
"흠~ 혹시 장끼 날개치는 소리?"
"에이~ 사람 빗발치는 이런 야산에 무신 꿩이 있겠어"

2071BA524D3CE94E2867F7

외롭다
나란히 있지만 흰 눈덩이를 머리에 이고 멀찍이 떨어져 있어선지 외로워만 보인다

1712CB474D3D0A1B04FA3B

"괜찮아?"
"뭐가?"
"아까 술 한병 혼자서 다 마셨잖아?"
"흥! 그깐거 코끼리코에 비스켓이지"
"허~ 전엔 않그렇더니 은제 술고래가 되었남?"
"이기 다 자기 땜시 생긴게지 "

"돌아 앉아야 얼굴이 나오지"
"싫어!"

190EB84D4D3D09F11C418F

185DEA4B4D3D0A9C20415B

도봉산의 명물 <섹스폰 나그네>
20여년전 우리 순희가 붙혀준 이름이다
아직도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이다
계절에 따라 차림새만 다를뿐


"번지없는 주막 한곡 불러 달랠까?"

말해 놓고 슬쩍 돌아보니
동행여인 고개를 외로 꼬고 냉냉히 쏘아 붙힌다
"우리씨 한테나 물어보지"
(우리씨?)


끌끌끌~~~ 승질머리 하고는~~~~~~

18748C4D4D3CFD47269CDD

<이날 12시부터 입산통제>


ㅡ2011년 1월 그날 억수로 눈 쏟아졌다네ㅡ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