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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53년의 세월ㅡ변치않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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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10-09-30 13:50 댓글 0건 조회 67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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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아침햇살이 황금색 법보(法寶)처럼 산사(山寺)의 돌담과 지붕을 휘감는다.
어디서 들리는가
분명 구슬 구르는 소리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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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울창창한 초목숲에서 한순간 후드득 하는 날개짓 소리가 들리니
불청객이 산새의 단잠을 깨웠구나.

和光同塵(화광동진)
날아갈듯 휘갈겨 쓴 네 글짜.
'빛처럼 부드럽게 널리 퍼져 속세의 티끌과 함께 한다' 는 뜻이니
자기를 감추고 세속과 현동(玄同)함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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挫其銳 解其紛 날카로움을 꺽고 어지러움을 풀고
和基光 同其塵. 빛남을 고르고 티끌과 한가지가 되나니
似或存 마치 없어도 있는듯 하구나.

노자(老子)의 이 가르침에서 나온 '화광동진'
불타가 본색을 감추고 속세에 나타나 법을 펼침과 같은 의미이니
곧 색즉시공
(色卽是空)이요, 공즉시색 (空卽是色)의 신묘한 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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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들어냄은 쉬우나 자신을 감춤은 어려우니
육십몇해를 고해속에서 허둥거린 이 육신에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知者不言 言者不知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쪼르르륵~ 쪼르르륵~
쉬임없이 흘러 나오는 용정(龍井)의 맑은 물을 보노라니 괜스레 울고 싶어진다.
그 시리도록 청정함이 속진(俗塵)의 오욕칠정(五欲七精)을 일거에 씻어 주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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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을 들어선다.
하 많은 인연에서 나를 끊어 버리고
한순간 여래(如來)의 법해(法海)에 심신을 맞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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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剛)은 곧 법으로 통하는 일념(一念)이니
용맹정진의 공부만이 '가야할 길' 을 찾을 터.
과연 이 문을 들어섰던 이 몇이나 '그 길' 을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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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의 세월이 나를 가로 막고 있었다.
국민학교시절 그래도 오늘만은 포시랍게 어머니가 정성들여 싸 주신
보리밥에 쌀 뜨믄뜨믄 넣은 벤또를 둘러메고
30여리를 족히 걸어 원족을 왔었던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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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까마득한 곳에 대관령 아흔아홉구비 웅혼한 산세가 펼쳐져 있고
회백색 암석사이를 구절양장(九折羊腸) 구비구비 꺾어 도는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면
만월산을 뒤에두고 천년고찰 보현사(普賢寺)가 은은히 또아리를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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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으로 장대석(長大石)을 쌓은후 기단(基壇)을 설치하고,
정으로 돌을 쪼아 홈을 판뒤
그 위에 기둥을 세워
정면 세칸, 측면 세칸으로 축조된'대웅전'의 아름다움은
수십년전 처음 보았을때의 간극도 뛰어 넘지 못했는가.
문외한인 내 눈에도 지금도 보면 볼수록 숨 막히도록 멋스럽고 전율 스럽도록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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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하나 흡집없다.
높히 솟은 겹추녀끝에 천년을 견딘 이끼가 오만하게 청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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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지금은 흔적만 남았지만
지붕 모서리의「귀꽃」은 무늬만은 뚜렸하다.
언뜻 부는 새벽 바람에 어느 순간 너울 손짓이다.
비록 무지몽매한 중생이언정 무한업보에서 건져내려 저리 안타까히 나를 바라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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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했던 선배가 언젠가 들었던 보현사의 전설을 되짚어 준다.

<신라때 천축에서 돌아오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강릉의 동남쪽 남항진해변에 당도
하여 문수사(文殊寺)를 세웠다. 이때 보현보살은 '한절에 두 보살이 함께 있을 필요
없으니 내가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에 절터를 삼겠다' 하고 시위를 당기니 바로
보현사터에 떨어졌으므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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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범일국사의 제1제자인 낭원(郎圓)이 이곳에 지장선원(地藏禪院)을 열어
학승들을 제도했다. 현재 '낭원대사오진탑' 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나한도량에는 조선후기 조성된 '16나한도' 와 '아미타불도' 등 귀중한 문화재급
불화(佛畵)가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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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원대사오진탑비는 53년전 소풍왔을 때는 없던 보호철책이 들러쳐져 있었다.
옛 생각만 하고 사진 한장 남기려 철책을 넘어 비석 옆에서 포즈를 취하는데
우뢰같은 호통소리가 터진다.
"이봐요. 당장 거기서 나오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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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겁을 하여 찍는둥 마는둥 한걸음에 달려 나왔다.
조용히 얘기해도 충분한 것을 저리 고래소리를 지를건 뭐람.
저러다 보현사 지붕 다 무너지겠네....
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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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도 끌끌 혀를 차면서 말했다.
"참~ 수도한다는 스님이 저리 경망스럽고 흉폭하게 말하다니...
아미타나한도가 찡그리겠어...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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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초짜 행자승(行者僧)인 모양이지"
옆에 있던 또한 선배의 말에,
"아니야~ 옷차림을 보니 사미승(沙彌僧)이 분명한데"
"그럼 정식으로 사미계(沙彌戒)를 받았을 테고 식자(息慈), 식악(息惡) 등의
근책율의(勤策律儀)도 알터인데 어찌 저리 폭악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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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세계(十方世界)를 떨어 울릴 범종각위에 이제 막 뿔끈 솟은 아침해가 찬란하다.
떨떠름한 기분으로 경내를 둘러보던 일행중에서 그여 또 한마디가 터져 나온다.
"저들이 이 고찰에 소장되어 있는 불화 한폭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알턱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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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불화의 금어(金語)로 유명한 석정(石貞)스님의 이야기일세"

「내가 어려서 불사소(佛事所)에서 견문한 바로는...불화를 직접 그리는 불모(佛母:
화공)는 변소에 다녀와서 목욕하고 옷을 바꿔 입고 붓을 들었고, 곁에서 법력있
는 증명법사(證明法師)가 정좌 정시(定視)하고, 송주법사(誦呪法師)는 그 붓을 놓을
때까지 법문을 쉬지 않고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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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선암사에 윤모(允某)라는 화공은 오른손을 삼베로 늘 싸매고 있다가
붓을 들때만 풀었다니 이런 정성과 일념으로 한폭의 불화가 만들어 졌다는데
저런 지각없는 일부 중들이 그 의미를 훼손 시키는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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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송림이 지키는 태산부동의 울타리를 뚫고
만월산 여기 저기서 푸드득 날개짓 소리와 벌레들의 찌르륵 소리들이
잠들어 있던 풀을 깨우고 나무를 흔든다.
지난밤 금강밀적(金剛密跡)처럼 버티던 산사도 적멸 (寂滅)을 깨트리고 함께 따라 기지개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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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소슬한 찬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하니
허허~ 이제 곧 가을이 오는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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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변해 있는 산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두어번 뒤돌아 보노라니
보현사는 어느순간 오색영롱한 조양(朝陽)으로 휘감겨 있었다.
내 비록
공문자(空門子:출가인)는 아닐찌라도
그 삽상(颯爽)함을 어찌 느끼지 못하랴.

53년전에도 거기 있었을 늙은 고목잎이 군데 군데 적황(赤黃)으로 물드는 품속에다
한옹큼 미련을 던져두고 휘적 내릿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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