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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기 트립 투 북유럽16 = 뭉크의 “절규”를 만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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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 투 북유럽16 = 뭉크의 “절규”를 만나다(1)
그림에는 뭉크의 삶이 농도 깊게 투영되어 있다. 뭉크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던 만큼 그의 고민도 많았다. 덕분에 우리는 뭉크가 남긴 '명화'를 즐겨 볼수 있게 되었다. |
<사진>1. 뭉크의 “절규(The Screem)”
뭉크의 “절규”는 2012년 소더비 경매에 부쳐져 무려 1억2000만 달러
(당시1,500억 원)에 낙찰돼 역대 네 번째 높은 가격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절규”에 등장하는 인물은 공포에 질려 양손으로 귀를 막고 정면을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그림의 주된 색체는 붉은색으로 해질녘의 빛남과
동시에 공포스런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사진>2. 뭉크의 사춘기
[겁먹은 눈망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가득]
사춘기의 발가벗은 소녀의 앙상한 두 팔, 아직 덜 성숙한 젖가슴,
겁에 질린 듯 커다란 눈동자에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가득 차 있다.
그림 속의 소녀는 자신의 변화에 놀라고 있으며 일직선으로 앉아 있는 가냘픈
소녀의 몸매는 침대의 하얀 시트를 가로질러 십자형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소녀 뒤의 커다란 검은 그림자는 사춘기에 느끼는 공포와 불안정함을 상징한다.
▩뭉크의 절규를 오슬로 국립 미술관에서 만나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노르웨이의 예술적 아이콘은 화가 “뭉크”다.
전문가 들은 그의 ‘절규’와 ‘마돈나’는 보석 중에 보석이라고 예찬하고 있다.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1863~1944)의 그림을 보기 위해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들렀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위대한 화가로 거듭난 뭉크의 삶과 작품을 감상해
보기 위해서다.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1863~1944),
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절규’라는 작품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김홍기 사장과 함께 오슬로에서 카를 요한스거리의 중심부를 건너
오슬로 국립미술관으로 갔다. 뭉크를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이 미술관은 유럽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노르웨이 최대의 전시관이다.
피카소, 르누아르, 세잔, 마네, 모딜리아나, 드가, 뭉크 등 그야말로 거장들의
전시관이다. 이곳의 인기 전시관은 말할 것도 없이 노르웨이 출신 작가 뭉크의
전시관이다. ‘사춘기’, ‘절규’ 등 58편이 전시되어 있다.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뭉크 작품등은 80%가 민간이 기부한 것이라고 한다.
관람객은 대부분 뭉크의 작품을 보기 위해 이 미술관에 들른다.
뭉크 작품이 아니면 구태여 이곳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는 것처럼.
어쨌든 미술관에는 뭉크 작품이 많이 전시돼 있었다.
그중 ‘절규(The Scream)’와 ‘마돈나(Madonna)’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우리를 포함한 많은 관람객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뭉크의 “절규” 앞에서
꼭 사진을 찍는다. ‘절규’는 1893년에서 1910년 사이에 4개의 버전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두 개는 유화이고 두 개는 파스텔화다.
국립미술관 소장품은 1893년에 만들어진 유화다.
나머지 유화 1점과 파스텔화 1점은 ‘뭉크 미술관(The Munch Museum)’이 갖고 있다.
유화는 1910년에 그린 것이고 파스텔화는 1893년에 만들었다.
이 3점은 좀체 다른 곳에 빌려주지 않기 때문에 오슬로에 와야만 볼 수 있다.
나머지 한 점의 파스텔화는 1895년 작으로 개인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2012년 소더비 경매에 부쳐져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무려 1억2000만 달러(당시1,500억 원)에 낙찰돼 역대 네 번째 높은 가격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그림은 낙찰된 이후 2012년 10월에서 2013년 4월까지
뉴욕 모마(MoMA)에 전시돼 일반인에게 선을 보이기도 했다.
뭉크는 이 작품에 ‘자연의 절규(Scream of Nature)’라고 독일어 제목을 붙였다.
뭉크의 ‘절규’는 아주 분노한 표정으로 절규하는 한 인간을 그리고 있다.
그 뒤에는 휘몰아치는 강물과 소란스러운 오렌지색 하늘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이것은 인간의 절규이고 자연의 절규다.
이미 100년 전에 뭉크는 절규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과 자연을 묘사했다.
이 그림을 현대 회화의 아이콘이자, 우리 시대의 모나리자라고 묘사하는 사람도 있다.
이제 우리는 뭉크를 통해 인간의 ‘우울’과 ‘절규’가 단지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절규가
아님을 알수 있다. 사회구조가 지닌 우울증과 구조적 신경쇠약,
결국 우리는 그 때문에 뭉크가 절규하게 되었음을 공감한다.
우리사회의 ‘절규’도 뭉크가 겪었던 사회와 결코 다르지 않다.
뭉크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안정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뭉크는 1863년 12월 12일 노르웨이의 한 시골에서 크리스티안 뭉크라는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뭉크는 병약한 아이로 태어났고, 1868년 겨울, 여섯 살 때 그의 어머니가
8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결핵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런데 뭉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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