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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 단돈 10원의 위력 앞에 눈물을 흘리던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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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영기 작성일 2011-07-22 19:50 댓글 0건 조회 6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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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찐 돼지보다 여윈 소크라데스가 되라는 격언을 가슴에 품고
  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목회자의 길을 꿈 꾸며 살아 왔다.

  목회의 길은 외롭고 고독한 십자가(十字架)의 길이다.
  "내 아버지 집에는 먹을것이 풍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눅15:17)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

집 나온 탕자 처럼 예수 믿는 까닭에 집안에서 미움받아 성경책 한권들고
빈손으로 쫓겨나 교회를 개척 했다.

1977년도 이른 봄 날
강원도 속초시 교동 664번지 2층 셋집

  형님께서 그당시 속초시 중앙동에 길목에서  큰 횟집을 경영하고 계셨다.
그것이 연고가 되어 무작정 집을 나왔다.

  집사람의 농협 부녀 부장 봉급 받은걸로 여비 삼고
  정선 본가를 (本家)떠나  속초시로 교회 개척을 나온 것이다.

옛말에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 겁없이 무작정 시작했다.

형님이 전세 30만원주고 2층 셋집을 얻어 준것이 우리 신혼 부부의 총 자산이 였다.
그리고
서울 본부로 부터 개척 보조금 매월 5만원 그것도 A급지역 최고의 선교 보조 금이다.

교인 이라야 형님 내외와 조카들 건물 주인 부부 우리 식구 그렇게 앉아 지켜 보는 가운데
원주와 서울 본부에서 오신 손님들과 창립 예배를 그렇게 드렸다.

그것도 형님 내외는 불교인 이라 그날만 형식적 교인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갓 결혼한 풋내기 전도사의 고민은 깊어 갔다.
  시골 부자라 해 봣자 농사일 부자지만  그래도 우리집은 마을에서 알아주는 부농(  富農)이다.

산(山)이 수십 정보가 마을에 병풍(屛風) 같이 둘러 있었고 바다 같은 논과 밭의 등기 장이
 궤짝으로 가득한 땅부자 였다.

할아버지 때부터 정미소를 운영해 오던 방아간 집이다.
그것도
나중에는 정미소를 두곳에서 운영할 정도 였다.

  나는 예수믿는 것 때문에 모든것을 포기하고 "예수를 따라 나선 것이다 "

  속초에서 시작한 목회 초년생 시절
  마음은 초조해 져 왔다. 

 빗은 늘어만 가고 교회는 부흥이 더디고 내몸은 바싹 깡그리 말라만 갔다.
  그때 오산리 순복음 금식 기도원과 청평 한얼산 기도원에 가 살다 싶이 햇다

미친듯이 기도하고 물만 마시고 금식 기도 했다.
  그덕에 일찍 방언도 받았고 신유도 임하고 귀신도 내 쫒는 능력도 체험했지만

여전히 육신은 배 곱 았다.
 개척 13개월 만에 나는 몸저 누웠다.

홧병과 열병(熱病)이 나서 속초 도립 병원에 급기야 입원까지 했고
아내는 임신하여 배가 만삭이던 그해 봄 날 .

상추 장수가 리어커에 상추를 싣고 지나가면서 상추사려 맛있는 상추
한 묶음에 100원이요 100원  하고 소리 첫다.
 
 임신한 아내는 싱싱한 상추가 먹고 싶어서 상추 장수 아저씨 뒤를
 따라가면서 아저씨! 상추 한묶음에 80원 에 안 될까요 ?
  안돼요.
  퉁명 스럽운 목소리로 잘라 거절 했다.

한 참 길을 가다  상추장수 아저씨 ! 뒤 돌아 보고 아주머니 !
90원에 가지고 가요.

집사람은 원래 물건을 못 깍는  사람인데 그날 주머니 전재산이
 80원 밖에 없었 단다.

너무나 임신중에 상추가 먹고 싶어서 집에 돌아와 잠 자리에 누웟는데
눈앞에 상추가 빙빙 돌며  왔다  갓다 했 단다.

남편인 내가 후일 그소리를 듣고 눈에 피눈물이 솟아 나며 가슴이 아려 왔다.

아이 까지 밴 집사람에게  천추(千秋) 에 못할 짓을 한것 같아서
나는 이를 꽉 물고 다짐하고 또 다짐 했다.

이놈의 맘몬(Mammon)을 내가 꼭 때려 잡을 거야 !  두고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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