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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 그대 손에는 지금 무엇이 들려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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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봉의산 작성일 2008-08-28 07:41 댓글 0건 조회 3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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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잎을 만졌더니 손에서 국화냄새가 난다. 과꽃봉오리를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더니 진한 보라색, 자주색 과꽃빛이 물들 것 같다. 느티나무 잎에서는 느티나무를 사랑하던 바람 소리가 느껴지고 갈참나무 등걸에서는 세월의 두께가 만져진다.

그대 손에는 지금 무엇이 들려 있는가. 무얼 꼭 잡고 있는가. 딱딱한 물건이나 짐승의 가죽은 아닌가. 금속성의 그 어떤 것이 들려있다면 그걸 가만히 내려놓아 보면 어떨까. 그대 사랑하는 이도 차갑고 싸늘한 것들을 만지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하여 싸늘한 것에 익숙하고 경직된 것을 편안하게 여기며 목소리에 금속성이 배어 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대 부디 삭막한 곳을 지나더라도 마른 꽃향기를 만나기를.
회색 콘크리트를 덮은 담쟁이 잎을 찾아보고, 가슴 적시는 악기소리에 잠시 젖어 있기를.
보도블록 위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라도 손에 주워 들고 걸어가기를.

 
<도종환 저 -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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