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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FC 김태진 과 이상협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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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ckim
작성일 2007-07-0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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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FC서울의 미래’ 이상협-김태진, 끝이 아닌 시작! 끝까지 달린다
단계를 밟아 목표점까지 차근차근 올라간다는 것. 누군가 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스포츠를 업으로 삼고 사는 이들에게는 이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되질 못한다. 다음 단계로 오르려 아무리 멀리 뛰어도 도무지 발이 닺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거니와 아무리 빈틈을 찾으려 해도 도대체 내 자리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진실된 노력만으로는 가능한 일은 아니기에, 자신의 의도대로 갈 수 없는 길이기에, 스포츠를 업으로 삼는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와 그 다음 단계 사이에서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다.
지금부터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그들이 걸어온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보다 나은 다음을 바라보며, 진실된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해도 진실된 노력의 힘을 믿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 목마른 FC서울 팬들에게 한줄기 샘물처럼 고마운 존재가 된 김태진, 이상협. 어느 때 보다 힘든 지금이기에 그저 건강하게 그라운드를 밟아주는 것 만으로도 든든한 그들이 펼쳐놓는 이야기를 통해, 과거, 현재 그리고 그들이 걸어갈 다음을 만나보자.
첫 번째 계단. 운명을 만나다
식상하지만 꺼내야겠다. '운명'이라는 단어가 아무리 식상하다 해도 그것 외엔 이 둘에게 있어 축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는 이유다.
" 처음엔 태권도를 했었어요. 축구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즐기는 정도 였구요. 그런데 축구가 너무 재밌는거에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제 발로 직접 찾아갔죠. 그냥 운명이었던 거죠. " 이상협의 입을 통해 나온 '태권도' 라는 단어에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던 김태진도 이내 말을 이었다. "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친구들하고 동네에서 축구를 하는데 그걸 보신 축구부 감독님이 축구 해보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자연스레 선생님을 따라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가게 됐고 여기까지 왔네요. " 축구가 하고 싶어 찾아간 이상협에게도, 자연스레 여기까지 걸어온 김태진에게도 축구는 그저 운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운명이라 여겼기 때문일까? 그들은 축구 선수로 사는 하루, 하루에 집중했고, 그만큼의 명성도 얻었다. 김태진의 출신교인 강릉농고와 연세대, 그리고 이상협의 출신고인 동북고는 적어도 축구에 있어서 만큼은 명문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은 학교들이다. 그만큼 자랑스런 기억도 많았을 터, 기억에 남는 일화를 설명해달라는 부탁에 이상협은 당차게 대답을 이어갔다. " 고등학교 시절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도 짜릿한 기억이죠. " 그렇다면 김태진은 어떨까? " 학창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응원 인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땐 절도 있는 응원이 좋았고, 대학교 땐 패기와 열정 있는 응원이 좋았어요. 너무 좋아서 경기 도중에도 힐끔힐끔 쳐다볼 정도였다니까요. " 그라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상협의 당찬 패기도, 말 한마디, 한마디, 마음에서 우러나는 듯한 김태진의 팬 사랑도 모두 갑작스레 생긴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운명이라 여겼기에 그만큼 열심히 뛰었고, 열심히 뛴 만큼 인정도 받았기에 당당히 입성한 프로무대에서 만난 2군 생활은 그들에게 그만큼 쓰렸지만, 그들은 멈출 수가 없었다.
두 번째 계단. 2군생활을 추억하다
추억하다 말하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가지는 않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2군에서의 생활은 지금 이들을 당당히 서게 한 밑거름과도 같았기에 추억이라는 수식어를 써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 죽어라 뛰었죠. "
2군 생활을 떠올리며 내 뱉은 이상협의 첫 대답. 그저 단 한 줄의 문장이었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그의 노력을 엿보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 때론 힘도 빠지고 착잡하기도 하죠. 저보다 어린 선수들이 1군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면 속상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뛰었어요. 1군으로 가기 위한 2군 생활이 아니라 정말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뛰었죠. " 솔직함이 묻어나는 김태진의 대답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정답과도 같았다. 2군 생활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오히려 반문을 하는 듯한 그들의 대답. " 나이가 비슷한 선수들이 많다 보니 마음도 통하고 재미 있어요.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기 때문에 마음도 통하구요. "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 나간 김태진에 이어 이상협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의견을 이어갔다. " 힘들긴 하죠. 그래도 다들 정말 열심히 뛰어요. 또래도 비슷하고 마음도 잘 맞다 보니 오히려 패스는 2군이 더 정확한 것 같아요. " 그들의 뇌리에 자리한 2군 생활은 이렇듯 절망적이기 보다 오히려 도전할 목표가 있어 희망적이었다. 도전할 목표가 있어 희망적이라는 이면에 올라가야 할 산이 높아 절망적인 모습이 자리잡고 있었을 터. 절망적인 면 보다 희망적인 면을 보고 달려와준 그들이 고마웠다.
함께 꿈을 펼치고 있기에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그들. " 우리는 눈만 봐도 알아요. 마음이 통하거든요 " 라고 말하던 김태진의 이야기에게도, " 별로 도움 안 되요 " 라며 우스개 소리를 하던 이상협의 이야기에게도 서로는 '동지'라는 뜨거운 단어로 자리매김 해 있었다. 그래서일까? 생각도 너무나 닮아 있는 둘.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대신 프로무대를 선택하는 선수들이 늘고 있는 요즘, 어린 선수들의 이른 프로진출에 대해 둘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를 거쳐 프로무대에 진출해도 늦지 않는다고 본단다. 학창시절의 추억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경험과 지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프로에 입단한 본인들도 수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고, 그래서 인지 어린 나이에 프로에 진출한 선수들을 보면 못내 안쓰럽단다. 두 선수 마음까지 따뜻했다.
자신이 의도한대로 나아간다면 그것만큼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의도대로 나아가지 않는 상황에 대한 힘듦을 배우며 가는 것도 좋다. 어차피 도달할 목표라면 조금 늦어도 많이 배우며 가는 것이 오히려 낳을 지도 모른다. 조금 돌아왔을지언정 지금 이렇게나 당당한 김태진, 이상협처럼.
세 번째 계단. 끝이 아닌 시작, 끝까지 달린다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푸른 잔디를 밟은 그 순간의 느낌, 어땠을까? "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어요. 사람도 많고... " 아직도 떨린다며 말을 잇는 김태진의 눈에선 아직도 그날의 설렘이 묻어 났다. " (이) 민성이 형의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됐어요. 감독님께서 중요한 역할을 맡겨 주신 만큼 뭔가 보여드려야 하니까요. " 아마도 김태진에게 첫 경기는 설렘 보다 책임감이 앞선 순간이었나 보다. 프로선수로서의 출발이라는 의미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는데, 10분만 뛰어도 지쳐버리게 만드는 긴장감과 책임감이 겹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행복 그 자체였어요 " 라며 입을 연 이상협, 당차다 못해 듬직한, 그다운 대답이 이어졌다. " 머리가 터지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뛰는 것도, 경기 중에 선배인 상대팀 선수들에게 당당하게 어필을 하는 것도 다 같은 이유에요. 제게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인 만큼 결코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2군 리그 경험을 가지고 올라왔는데 약하게 굴면 안되잖아요. 2군 리그 경험을 발판 삼아 1군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는 거 보여주고 싶어요. 경기 중에 몸을 사리거나 물러 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 이렇게나 든든한 사람들이 FC서울의 선수라는 것, 가슴 한 켠이 따뜻해 질 만큼 기분 좋은 사실이었다.
다소 진지해진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골 세리머니도 팬 확보 전략의 일종이라며 장난을 치는 이상협. 말이 나온 김에 김태진에게 생각해 놓은 세리머니가 없느냐고 물어보니 '비밀'이라며 입을 닫아 버린다.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조만간 골을 넣고 그라운드를 질주할 김태진을 통해 직접 보는 것이 더 낳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런 그들에게 FC서울, 그리고 팬들은 어떤 의미로 자리잡고 있을까? " 행복이죠. 골을 넣고 항상 팬들에게 달려가는 것도 그들이 있기에 내가 있기 때문이에요. " 무슨 말이 필요할까?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인터뷰 내내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김태진의 이어진 대답, " 의미요? 글쎄요? 그것보다 전 FC서울 선수로 사는 하루하루가 소중해요. 또, 비가오나 눈이오나 경기장을 찾아주시는 분들, 그야말로 감동이죠. 팬들의 고마움을 알아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요. " 명예기자들이 선물 받은 태진당(FC서울 홈페이지 게시판의 김태진을 응원하는 회원들의 모임) 배지 얘기를 꺼내자 더 없이 환한 미소를 짓는 김태진. 그에게 아마도 FC서울, 그리고 팬은 그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을 보물과도 같은 존재인 듯했다.
시작하는 젊음으로 걸어온 길 보다 걸어 가야 할 길이 더 먼 그들이 큰 꿈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물어본 마지막 질문은 '최종 목표'였다. 예상치 못했던 이상협의 대답, " FC서울에 뼈를 묻겠습니다. " 감동스러움에 정신 없어 하던 찰나 김태진이 말을 이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큰 구단에서 물론 뛰고 싶죠. 그렇지만 그보다 먼저는 FC서울이에요. FC서울의 유니폼을 입은 자체가 제겐 감동인걸요. " 스타일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FC서울을 사랑한다' 말하고 있었고, 듣는 이의 가슴속에 FC서울이 담겨있던 탓일까? 그들이 한 없이 고맙고, 든든했다.
너무나 중요한 시작을 맞은 그들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다해주고 싶으나, 할 수 있는 거라곤 김태진, 이상협이 닮고 싶다던 폴 스콜스, 웨인 루니를 닮고, 뛰어 넘어 더 큰 선수가 되게 해 달라 기도하고, 지켜봐 주는 것뿐인 듯했다. 그리고 쉼 없이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이기에 그리 되리라 믿고 기다리는 것 이외엔 없지 않을까.
인터뷰 뒷 이야기
인터뷰가 진행됐던 23일은 27일 열릴 2007 컵 대회 결승전을 위한 훈련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역력했고 이상협 선수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인터뷰 중간중간 시간을 확인하며 훈련에 지장이 없는지를 확인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당장은 컵 대회 우승 이외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말했던 두 선수. 인터뷰 내내 든든함을 보여줬던 두 선수는 2007 컵 대회 결승전에 나란히 선발 출전했고, 몸이 부서져라 뛰었습니다.
결과는 준우승. 우리 선수들의 노력만으로 결과를 결정지어야 한다면 '우승' 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모자랄 것입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김태진, 이상협을 포함해 우리 FC서울 선수들에게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습니다. 그대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 행복했던 90분이었다고, 결과야 어떻든 우리 마음속의 챔피언은 언제나 그대들이라고. 쉽지 않은 길, 그러나 단 1분 1초도 '투지'라는 끈을 놓지 않아준 그대들이 고맙다고. 마지막으로 김태진, 이상협, 그리고 FC서울의 모든 선수들, 우리는 그대들의 팬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글=공희연 FC서울 명예기자 사진=유경식 FC서울 명예기자
단계를 밟아 목표점까지 차근차근 올라간다는 것. 누군가 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스포츠를 업으로 삼고 사는 이들에게는 이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되질 못한다. 다음 단계로 오르려 아무리 멀리 뛰어도 도무지 발이 닺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거니와 아무리 빈틈을 찾으려 해도 도대체 내 자리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진실된 노력만으로는 가능한 일은 아니기에, 자신의 의도대로 갈 수 없는 길이기에, 스포츠를 업으로 삼는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와 그 다음 단계 사이에서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다.
지금부터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그들이 걸어온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보다 나은 다음을 바라보며, 진실된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해도 진실된 노력의 힘을 믿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 목마른 FC서울 팬들에게 한줄기 샘물처럼 고마운 존재가 된 김태진, 이상협. 어느 때 보다 힘든 지금이기에 그저 건강하게 그라운드를 밟아주는 것 만으로도 든든한 그들이 펼쳐놓는 이야기를 통해, 과거, 현재 그리고 그들이 걸어갈 다음을 만나보자.
첫 번째 계단. 운명을 만나다
식상하지만 꺼내야겠다. '운명'이라는 단어가 아무리 식상하다 해도 그것 외엔 이 둘에게 있어 축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는 이유다.
" 처음엔 태권도를 했었어요. 축구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즐기는 정도 였구요. 그런데 축구가 너무 재밌는거에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제 발로 직접 찾아갔죠. 그냥 운명이었던 거죠. " 이상협의 입을 통해 나온 '태권도' 라는 단어에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던 김태진도 이내 말을 이었다. "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친구들하고 동네에서 축구를 하는데 그걸 보신 축구부 감독님이 축구 해보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자연스레 선생님을 따라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가게 됐고 여기까지 왔네요. " 축구가 하고 싶어 찾아간 이상협에게도, 자연스레 여기까지 걸어온 김태진에게도 축구는 그저 운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운명이라 여겼기 때문일까? 그들은 축구 선수로 사는 하루, 하루에 집중했고, 그만큼의 명성도 얻었다. 김태진의 출신교인 강릉농고와 연세대, 그리고 이상협의 출신고인 동북고는 적어도 축구에 있어서 만큼은 명문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은 학교들이다. 그만큼 자랑스런 기억도 많았을 터, 기억에 남는 일화를 설명해달라는 부탁에 이상협은 당차게 대답을 이어갔다. " 고등학교 시절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도 짜릿한 기억이죠. " 그렇다면 김태진은 어떨까? " 학창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응원 인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땐 절도 있는 응원이 좋았고, 대학교 땐 패기와 열정 있는 응원이 좋았어요. 너무 좋아서 경기 도중에도 힐끔힐끔 쳐다볼 정도였다니까요. " 그라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상협의 당찬 패기도, 말 한마디, 한마디, 마음에서 우러나는 듯한 김태진의 팬 사랑도 모두 갑작스레 생긴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운명이라 여겼기에 그만큼 열심히 뛰었고, 열심히 뛴 만큼 인정도 받았기에 당당히 입성한 프로무대에서 만난 2군 생활은 그들에게 그만큼 쓰렸지만, 그들은 멈출 수가 없었다.
두 번째 계단. 2군생활을 추억하다
추억하다 말하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가지는 않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2군에서의 생활은 지금 이들을 당당히 서게 한 밑거름과도 같았기에 추억이라는 수식어를 써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 죽어라 뛰었죠. "
2군 생활을 떠올리며 내 뱉은 이상협의 첫 대답. 그저 단 한 줄의 문장이었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그의 노력을 엿보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 때론 힘도 빠지고 착잡하기도 하죠. 저보다 어린 선수들이 1군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면 속상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뛰었어요. 1군으로 가기 위한 2군 생활이 아니라 정말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뛰었죠. " 솔직함이 묻어나는 김태진의 대답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정답과도 같았다. 2군 생활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오히려 반문을 하는 듯한 그들의 대답. " 나이가 비슷한 선수들이 많다 보니 마음도 통하고 재미 있어요.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기 때문에 마음도 통하구요. "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 나간 김태진에 이어 이상협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의견을 이어갔다. " 힘들긴 하죠. 그래도 다들 정말 열심히 뛰어요. 또래도 비슷하고 마음도 잘 맞다 보니 오히려 패스는 2군이 더 정확한 것 같아요. " 그들의 뇌리에 자리한 2군 생활은 이렇듯 절망적이기 보다 오히려 도전할 목표가 있어 희망적이었다. 도전할 목표가 있어 희망적이라는 이면에 올라가야 할 산이 높아 절망적인 모습이 자리잡고 있었을 터. 절망적인 면 보다 희망적인 면을 보고 달려와준 그들이 고마웠다.
함께 꿈을 펼치고 있기에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그들. " 우리는 눈만 봐도 알아요. 마음이 통하거든요 " 라고 말하던 김태진의 이야기에게도, " 별로 도움 안 되요 " 라며 우스개 소리를 하던 이상협의 이야기에게도 서로는 '동지'라는 뜨거운 단어로 자리매김 해 있었다. 그래서일까? 생각도 너무나 닮아 있는 둘.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대신 프로무대를 선택하는 선수들이 늘고 있는 요즘, 어린 선수들의 이른 프로진출에 대해 둘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를 거쳐 프로무대에 진출해도 늦지 않는다고 본단다. 학창시절의 추억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경험과 지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프로에 입단한 본인들도 수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고, 그래서 인지 어린 나이에 프로에 진출한 선수들을 보면 못내 안쓰럽단다. 두 선수 마음까지 따뜻했다.
자신이 의도한대로 나아간다면 그것만큼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의도대로 나아가지 않는 상황에 대한 힘듦을 배우며 가는 것도 좋다. 어차피 도달할 목표라면 조금 늦어도 많이 배우며 가는 것이 오히려 낳을 지도 모른다. 조금 돌아왔을지언정 지금 이렇게나 당당한 김태진, 이상협처럼.
세 번째 계단. 끝이 아닌 시작, 끝까지 달린다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푸른 잔디를 밟은 그 순간의 느낌, 어땠을까? "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어요. 사람도 많고... " 아직도 떨린다며 말을 잇는 김태진의 눈에선 아직도 그날의 설렘이 묻어 났다. " (이) 민성이 형의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됐어요. 감독님께서 중요한 역할을 맡겨 주신 만큼 뭔가 보여드려야 하니까요. " 아마도 김태진에게 첫 경기는 설렘 보다 책임감이 앞선 순간이었나 보다. 프로선수로서의 출발이라는 의미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는데, 10분만 뛰어도 지쳐버리게 만드는 긴장감과 책임감이 겹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행복 그 자체였어요 " 라며 입을 연 이상협, 당차다 못해 듬직한, 그다운 대답이 이어졌다. " 머리가 터지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뛰는 것도, 경기 중에 선배인 상대팀 선수들에게 당당하게 어필을 하는 것도 다 같은 이유에요. 제게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인 만큼 결코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2군 리그 경험을 가지고 올라왔는데 약하게 굴면 안되잖아요. 2군 리그 경험을 발판 삼아 1군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는 거 보여주고 싶어요. 경기 중에 몸을 사리거나 물러 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 이렇게나 든든한 사람들이 FC서울의 선수라는 것, 가슴 한 켠이 따뜻해 질 만큼 기분 좋은 사실이었다.
다소 진지해진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골 세리머니도 팬 확보 전략의 일종이라며 장난을 치는 이상협. 말이 나온 김에 김태진에게 생각해 놓은 세리머니가 없느냐고 물어보니 '비밀'이라며 입을 닫아 버린다.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조만간 골을 넣고 그라운드를 질주할 김태진을 통해 직접 보는 것이 더 낳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런 그들에게 FC서울, 그리고 팬들은 어떤 의미로 자리잡고 있을까? " 행복이죠. 골을 넣고 항상 팬들에게 달려가는 것도 그들이 있기에 내가 있기 때문이에요. " 무슨 말이 필요할까?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인터뷰 내내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김태진의 이어진 대답, " 의미요? 글쎄요? 그것보다 전 FC서울 선수로 사는 하루하루가 소중해요. 또, 비가오나 눈이오나 경기장을 찾아주시는 분들, 그야말로 감동이죠. 팬들의 고마움을 알아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요. " 명예기자들이 선물 받은 태진당(FC서울 홈페이지 게시판의 김태진을 응원하는 회원들의 모임) 배지 얘기를 꺼내자 더 없이 환한 미소를 짓는 김태진. 그에게 아마도 FC서울, 그리고 팬은 그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을 보물과도 같은 존재인 듯했다.
시작하는 젊음으로 걸어온 길 보다 걸어 가야 할 길이 더 먼 그들이 큰 꿈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물어본 마지막 질문은 '최종 목표'였다. 예상치 못했던 이상협의 대답, " FC서울에 뼈를 묻겠습니다. " 감동스러움에 정신 없어 하던 찰나 김태진이 말을 이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큰 구단에서 물론 뛰고 싶죠. 그렇지만 그보다 먼저는 FC서울이에요. FC서울의 유니폼을 입은 자체가 제겐 감동인걸요. " 스타일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FC서울을 사랑한다' 말하고 있었고, 듣는 이의 가슴속에 FC서울이 담겨있던 탓일까? 그들이 한 없이 고맙고, 든든했다.
너무나 중요한 시작을 맞은 그들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다해주고 싶으나, 할 수 있는 거라곤 김태진, 이상협이 닮고 싶다던 폴 스콜스, 웨인 루니를 닮고, 뛰어 넘어 더 큰 선수가 되게 해 달라 기도하고, 지켜봐 주는 것뿐인 듯했다. 그리고 쉼 없이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이기에 그리 되리라 믿고 기다리는 것 이외엔 없지 않을까.
인터뷰 뒷 이야기
인터뷰가 진행됐던 23일은 27일 열릴 2007 컵 대회 결승전을 위한 훈련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역력했고 이상협 선수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인터뷰 중간중간 시간을 확인하며 훈련에 지장이 없는지를 확인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당장은 컵 대회 우승 이외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말했던 두 선수. 인터뷰 내내 든든함을 보여줬던 두 선수는 2007 컵 대회 결승전에 나란히 선발 출전했고, 몸이 부서져라 뛰었습니다.
결과는 준우승. 우리 선수들의 노력만으로 결과를 결정지어야 한다면 '우승' 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모자랄 것입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김태진, 이상협을 포함해 우리 FC서울 선수들에게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습니다. 그대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 행복했던 90분이었다고, 결과야 어떻든 우리 마음속의 챔피언은 언제나 그대들이라고. 쉽지 않은 길, 그러나 단 1분 1초도 '투지'라는 끈을 놓지 않아준 그대들이 고맙다고. 마지막으로 김태진, 이상협, 그리고 FC서울의 모든 선수들, 우리는 그대들의 팬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글=공희연 FC서울 명예기자 사진=유경식 FC서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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