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

축구부 게시판

오원종 관련 기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 2009-07-07 17:08 댓글 0건 조회 2,871회

본문

[스포탈 스페셜] 누가 오원종을 깜짝 스타라고 했나?
 | 기사입력 2009-07-07 11:33

 

[스포탈코리아] 서호정 기자= “(김)영후도 있고, (윤)준하도 있는데 왜 하필 저를 인터뷰하세요?”

강원FC 숙소에서 만난 오원종(26)은 이유를 모르는 눈치였다. 울산, 성남, 전북 등 K-리그의 오랜 강자들을 차례로 연파하며 시즌 초반 이후 다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강원FC. 그 돌풍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오원종 자신임에도 그는 여전히 언론의 조명이 자신에게 향하는 상황 자체를 낯설어했다.

많은 이들이 왜 그 기량을 인정하고 주목하는 지 본인만 모르는 걸까. 오원종은 탁월한 공간 침투와 침착한 마무리, 스피디하면서도 기술 있는 돌파력을 앞세워 강원이 3연승을 거두는 동안 세 경기 연속 골을 기록했다. 최근 상위권 팀 한 감독은 사석에서 강원 선수 중 오원종이 탐난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깜짝 스타? No! 강릉은 그의 부활을 기다렸다

오원종은 최근의 활약으로 주목 받기 전까지 축구 팬들에게 낯선 이름이었다. ‘저 선수가 대체 누구냐’라는 반응부터 ‘깜짝 스타’라는 수식어도 나왔다. 그러나 올 시즌 전반기 동안 강원FC가 홈으로 사용하고 있는 강릉 사람들에겐 과거에도, 현재도 오원종은 슈퍼스타다. 강릉의 축구 열기를 주도하는 강릉농공고 출신인 그는 고교시절부터 지역은 물론 전국에서 통했던 특급공격수였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오원종은 강릉농공고 출신이었던 감독의 반 권유 겸 지시로 친구 세 명과 강릉으로 넘어갔다. 당시 전국 최강 중 하나였던 강릉농공고에서 오원종은 김호준, 이호진, 윤화평, 최재수 등의 동기들과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강릉의 축구 팬들은 누구보다 오원종의 부활을 기다렸던 것이다. 실제로 강원 구단 관계자는 “가끔 택시를 타면 기사분들이 근황을 가장 많이 묻는 선수가 바로 오원종이다”라고 전할 정도다.

이후 청소년 대표팀에도 선발됐고 축구 명문인 연세대로 진학했던 오원종은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2006년 경남FC의 창단 멤버로 프로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프로 무대는 녹록하지 않았다. 8경기에 출장하며 단 하나의 공격포인트도 기록하지 못한 오원종은 이듬해 짐을 싸야 했다. 다시 그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팀도 없자 기량에 대해서만큼은 자부심이 강했던 그의 충격은 더 컸다. 그대로 축구를 접겠다는 생각까지 했던 시기다.

“좋은 활약은 아니었지만 경남에서 경기를 뛰며 내년, 후년의 미래를 생각하며 자신감을 키웠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떨어져 나가면서 실망감이 컸다. 그 후 1년 간 운동을 쉬었다. 그런데 (김)치곤이나 (김)영광이, (조)원희 같은 청소년 대표팀 시절 친구들이 활약하고 TV에 나오는 걸 보니까 다시 열정이 되살아났다. 부모님과 고교시절부터 나를 응원해준 팬들께서도 다시 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셔널리그의 강릉시청으로 돌아갔다. 운동을 쉬어서 몸 상태가 안 좋았지만 그래도 K-리그로 복귀하겠다는 강한 목표의식을 품었다.”

오원종을 특별한 중고 신인으로 만드는 것은 이 같은 경력 때문이다. K-리그에서 내셔널리그로 떨어지는 사례는 많지만 다시 K-리그로 돌아오는 것은 극소수의 사례기 때문이다. 특히 그에게 K-리그 복귀의 기회가 주어진 팀이 제2의 고향인 강원을 연고로 하는 신생팀이 된 것은 마치 하나의 정해진 운명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3년의 세월이 알려준 유려함

2006년 프로 선수로서 실패했던 오원종은 2009년 현재 11경기에 나서 3골 1도움을 기록 중이다. 도민 구단에 신생팀이라는 비슷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오원종의 활약을 180도 다르게 만들어 놓은 힘은 K-리그 복귀를 위해 기다린 3년의 시간이 가르쳐 준 유려함이었다.

“경남에서는 어떻게든 뛰어야한다는 생각에 내 플레이만 생각했다. 한번 실패하고, 나이가 들어서 뛰게 되니까 지금은 출장에 대한 열망보다는 팀 전체를 생각하게 된다. 사실 내 포지션에는 정경호라는 뛰어난 선배가 있다. 부상 중이라서 내게 운 좋게 기회가 온 것이고, 언제까지 지금의 기회가 계속 주어질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욕심보다는 팀에 융화되고, 최순호 감독님이 강조하시는 전체의 균형을 맞춰가는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기회가 왔다.”

“주변에선 날 보고 낙천주의자라고 한다. 실은 그게 아니다. 나보다 잘하는 선수를 겉으로는 인정하는 것 같지만 속으론 칼을 간다. 예전에는 바깥으로 그걸 다 내보였다. 출전 못하면 밥도 안 먹고, 인상도 쓰고. 또 내가 잘해야만 팀이 잘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지금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고참과 어린 선수들 사이의 징검다리가 되려고 한다. 경기에 나서려면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잘 아니까 그게 되는 것이다.”

강원은 더 이상 신생팀이 아니다

오원종은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비록 고향은 아니지만 자신이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성장한 만큼 강원FC가 성공적으로 K-리그에 자리를 잡게 하는 데 맡아야 할 역할일 크다는 의무감을 보였다. 오원종을 비롯한 강원 출신 선수들의 그런 마음가짐 때문인지 강원FC는 성적과 경기 내용, 흥행 등 다방면에서 인상적인 성공을 거두며 K-리그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야구는 부산이고, 축구는 강릉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 농상전으로 시작된 강릉과 강원도의 축구 열기는 엄청나다. 나도 그 경기를 뛰어봤으니까 축구에 대한 이 곳 사람들의 남다른 열정을 안다. 쉽게 말하면 드세고, 무시무시한 중년 부대가 많다. 프로 팀도 당연히 엄청난 성원을 받을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강원의 장밋빛 미래는 지금부터다. 창단팀의 반짝 효과로 그치지 않고 K-리그에서도 가장 뜨거운 축구고장이 되기 위해서는 강원FC, 그리고 오원종을 비롯한 선수들의 노력이 중요하다. 오원종은 강원FC 특유의 조직력과 균형의 축구를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신생팀이라는 이미지에 기대는 것에서 벗어나 상대의 견제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팀이 되고 싶다고 희망했다.

“우리는 선수 층도 얇고, 전반적인 경험도 적다. 대신 신구조화가 잘 된다. 의욕도 굉장한데다 팀워크에 집중하고 특정 선수가 아닌 전체적인 균형을 갖췄다. 그래서 강팀에게도 강하다. 중간에 침체되기도 했지만 전혀 위기감은 없었다. 막내구단인데 어떠냐, 지더라도 할 거 다 하고 나오자라는 생각이었다.”

“이제 강원은 창단팀이 아니다. K-리그에 참가한지도 벌써 5개월 째다. 이제 창단팀이라는 메리트에 기대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기존 팀들 모두 우리는 주목하고 견제한다. 더 강하게 경쟁해야 한다.”

그의 말대로 강원은 더 이상 신생팀이 아니다. 2009시즌 K-리그가 주목하고 경계하는 돌풍의 근원지다. 오원종 역시 깜짝 스타도 중고 신인도 아니다. 부활한 강릉의 슈퍼스타일 뿐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